[최병일의 이코노믹스] 기득권에 좌절한 젊은층 몰리며 가격 급등

2021. 1. 2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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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전세계적 화제 된 비트코인
급락 후 잠잠하다 3년 만에 재등장
'포모 증후군'으로 임계점 넘어 급등
기득권의 거부로 안갯속 비행 될듯


비트코인의 새로운 경제 문법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1. 2017년 가을, 미국 시애틀 지사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가는 제자가 인사하러 왔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돌본다고 직장 대신 보육을 선택한 제자는 비트코인 이야기를 꺼냈다. 비트코인을 외계 혹성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치부하던 터에 제자가 들려준 비트코인 생활은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재무일기였다. 비트코인 시세 확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제자는 비트코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단언했다. 그 주변의 선배, 친구 모두 비트코인 안 하는 사람 없다는 것이 대세의 증거였다. 확연한 대세 바깥에 머물러 있는 스승이 딱한 듯, 제자는 비트코인 계좌 개설하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고 헤어졌다.

#2. 그로부터 몇달 후, 비트코인은 경제학계의 토론주제로 등극하게 된다. 2018년 2월 춘천 강원대에서 개최된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는 ‘가상화폐’를 주제로 내걸었다. 비트코인 광풍을 튤립 씨앗의 가격이 집 한 채보다 더 높았던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bubble)쯤으로 치부하는 회의론과 미래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역설하는 장밋빛 전망이 팽팽히 맞서 겨울의 한파를 녹일 지경이었다.

#3. 또 다른 제자의 얘기도 있다. 2018년 농염한 봄 공기가 가득한 저녁. 그해 봄 대학원에 진학한 제자가 모임에 가장 늦게 나타났다. 회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주경야독(晝耕夜讀) 아닌 주독야경의 경지에 있는 그 제자에게 ‘耕’의 정체는 바로 가상화폐였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더 공부해 보겠다고 대학원 갔던 제자는 가상화폐의 신세계에 텀벙 빠져버렸다. 대학원에서 새로 만난 동기·선배들이 가상화폐 하는 것 보고 “바로 이거다”라는 번쩍임이 왔단다. 대학원 강의시간 외에는 온전히 가상화폐 스타트업에만 매달린다고 했다. 새벽 4시가 정상적인 퇴근 시간이라고 했다. 비트코인 이외에 ‘알트(Alternative coin)’로 불리는 무수한 가상화폐가 등장했다. 제자는 알트를 세상으로 내보내려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자기 주변에 가상화폐에 ‘영끌’한 사람들로 바글바글한다고 했다. 그날도 저녁 모임 후 다시 회사 들어간다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 못 해

최병일 이코노믹스 그래픽=신용호

2020년 12월 비트코인은 급등을 거듭하면서 최고 가격을 갱신했다. 올해 들어 1월에는 4만 달러라는 일찍이 상상하지 못했던 가격을 돌파했다. 하지만, 4만2000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10여일 만에 3만 달러 아래로 무려 30%가량 급전직하했고, 다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또다시 하락하며 급등락의 혼조세를 보인다.

비트코인은 롤러코스터쯤은 비교되지도 않을 만큼 극도의 변동성을 보인다. 하루 10%대의 급락·급등은 다반사다. 비트코인 가격이 2016년부터 최고점에 도달했던 1년여 기간 동안 30% 이상 급등락이 무려 6번 있었다. 이쯤 되면 그 변동 폭은 치명적이다. 비트코인의 극도의 변동성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의 ‘비합리적인 과열 (irrational exuberance)’만으로는 정당화하기 어려운 그 바깥에 있다.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을 벌었다는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소문은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영국의 어떤 기술자가 비트코인이 든 자신의 드라이브를 실수로 버려서 3000억원을 공중에 날려버렸다는 이야기는 소설처럼 황당하지만, 비트코인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낙관론과 거품이 걷히는 시작일 뿐이라는 비관론이 선명한 흑백처럼 대비되고 있다. 세상은 왜 비트코인과 치명적인 애증 관계에 빠졌을까?

세상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들의 가격 분석에 지존의 지위를 자부하는 경제학은 비트코인의 가격변동에 대해 어떤 설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주가는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참여자들이 그 상품에 대한 가치를 반영한다는 기본명제는 비트코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의문은 꼬리를 문다. 도대체 얼마나 새롭고 획기적인 정보들이, 그것도 하루 사이에 유입되길래, 하루 10%의 변동 폭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정보의 문제가 아닌 시장참여자들의 행태의 문제라는 자연스러운 추론에 도달한다.

행동경제학이 던지는 단서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다. 다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버는데 나만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이른바 ‘개미’들까지 비트코인으로 몰려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불완전하긴 마찬가지다. FOMO는 관망하고 주저하고 있던 개미들을 시장으로 내모는 것을 설명할 뿐이다. 다수의 사람이 초기에 비트코인으로 몰려들어 임계질량(critical mass)을 형성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진 못한다. 임계질량이 만들어지면, ‘대세’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FOMO는 그 이후에 벌어진다. 기존 경제이론의 틀을 넘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롤러코스터 장세에도 청년들 몰려

비트코인 시세 추이


가격이 폭락했던 동안에도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만들어내려는 청년들의 창업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비트코인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다. 비트코인을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blockchain)은 탈중앙·탈권위·탈감시를 지향한다. 미국의 무차별적 개인정보 수집 실태를 공개한 스노든(Snowden)의 폭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완벽을 더해가는 안면 인식 기술, 권력과 기술의 협공 속에 침해되는 사생활의 위기 속에서 청년세대는 익명성을 갈망한다. 가상화폐 창업 열기는 그 몸부림의 현장이다.

롤러코스터보다 아찔한 등락 장세에도 비트코인 시장에는 더 많은 청년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에게 비트코인은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반항이다. 세계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가져가 기득권으로 군림한 기성세대에 비해, 청년세대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락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부를 축적할 수 없음에 절망한다.

일자리 자체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평생직장·정년보장이란 단어는 박물관의 기록 마냥 낯설다. 쓰레기 매립지에 묻은 수천억 원어치 비트코인을 파게 해 달라는 영국 기술자의 호소에서 좌절하고 있던 청년세대는 일확천금의 통로를 발견한다. 누구나 도전할 기회의 창. 출신 배경에 따라 정해지는 출발선이 아닌 세상. 비트코인의 마법이 청년세대를 매혹하는 이유다.

비트코인이 쓰고 있는 문법은 디지털 기술혁명이 압도하는 21세기 초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득권과 신세대 간의 대격돌이다. 기득권이 순순히 양보한 역사는 없었다. 새로운 것이 늘 득세한 것만도 아니었다. 지금처럼 기득권이 비트코인을 투기적인 상품으로 대하는 한, 비트코인의 미래는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의 비행을 각오해야 한다.

■ 그 누구도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 본 적 없어

「 비트코인은 나카모토 사토시의 2008년 논문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s Cash System)에서 시작됐다. 2009년, 이 논문에 기반을 둔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여기까지는 기록된 역사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카모토 사토시를 본 사람은 없다. 실명확인은 물론, 실존하는 인물인지조차 베일에 가려있다. 나카모토 사토시란 이름은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스코틀랜드 네스 호의 괴물처럼, 혁명을 꿈꾸었던 볼셰비키처럼 세상을 떠돌고 있는 유령이다. 신비주의 베일 속에 비트코인 이야기는 더 열광적인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가진 정부가 화폐 발권을 독점하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꾸는 가상화폐. 어떤 국가권력기관도 세금을 추징할 수 없는 자신만의 화폐를 꿈꾸는 자에게는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극심한 인플레로 돈 가치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시민들에게는 대단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비트코인을 가능케 하는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불특정 다수가 거래기록을 공유하고 보관한다. 소중한 거래기록을 정부의 공인 장부에만 남긴다는 것은, 국가권력에 보안을 맡겨 둠을 의미한다. 어둠의 세력에 의한 해킹 가능성은 물론이고, 강제력을 가진 정부에 휘둘릴 가능성은 상존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치명적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다. 비트코인은 경제민주화의 실험장이다.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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