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블랙박스
1934년 호주 배스 해협에 비행기 한 대가 추락했다. 당시 9살 데이비드 워런(1925~2010)은 이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대학을 마친 워런은 52년 호주 항공조사연구소(ARL)에 입사했다. 이듬해 세계 최초 제트여객기인 코메트1 추락사고 조사단에 참가했다. 그는 조종사의 음성이나 비행 기록이 있다면 사고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여기서 착안해 56년 화재나 폭발에도 견딜 수 있는 블랙박스 시제품을 발명했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공로를 기려 2008년 자사 에어버스 A380기 한 대를 ‘데이비드 워런 호’로 명명했다.
블랙박스는 항공기 고도·속도 등을 기록하는 FDR(Flight Data Recorder)과 조종사의 대화·교신 등을 녹음하는 CVR(Cockpit Voice Recorder)로 구성된다. 이름과 달리, 장비 자체는 주황·노랑 등 밝은색이다. 사고 후 찾아내려면 눈에 잘 띄는 색이 낫기 때문이다. 항공기에서 유래한 블랙박스는 오늘날 자동차에도 사용된다. FDR에 해당하는 차량용 장비가 EDR(Event Data Recorder), CVR에 해당하는 장비가 흔히 블랙박스로 불리는 대시보드 카메라(dashboard camera, 대시캠)다. 대시캠은 차량 전후방 및 내부의 영상과 음성을 기록한다.
영국 저널리스트 매슈 사이드(51)는 저서 『블랙박스 시크릿』(2015)에서 ‘블랙박스 사고(思考, Blackbox Thinking)’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블랙박스를 분석해 사고 방지 대책을 마련하듯, 잘못을 통해 배우자는 거다. 블랙박스 발명의 계기가 된 코메트1의 추락 원인은 창문 모서리의 피로 균열이었다. 그래서 초기 사각형이던 항공기 창문이 오늘날 둥그레졌다. 2009년 US에어웨이즈 여객기 추락사고를 다룬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2016)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조종사 체슬리 슐렌버거는 영화의 원작이 된 수기에 “항공 분야의 모든 지식, 규칙, 절차는 누군가, 어디선가 추락했기에 존재한다”고 썼다. 앞선 사고가 안전 비행의 밑거름이 된 거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택시기사가 복원해 제출한 블랙박스(대시캠) 영상을 경찰이 묵살(또는 은폐)했던 게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어떤 사건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려면, 잘못에서 배우려는 ‘블랙박스 사고’가 필요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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