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영국을 떠나는 영국 지휘자
2013년 베를린필 기자회견장에 비틀스의 노래 가사가 등장했다. “내가 64세가 돼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When I’m Sixty-Four’ 중) 64세 생일이 지나는 2018년에 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 자리를 떠나게 되는 사이먼 래틀이 읊은 가사였다. 그는 2002년부터 베를린필을 16년 이끌었다.
래틀은 비틀스처럼 리버풀 출신이고, 영국의 문화적 상징이다. 리버풀에서 열 살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리버풀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버밍엄시 오케스트라를 18년 이끌어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영국의 자부심도 함께 높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지휘봉은 당연히 래틀이 쥐었다. 쟁쟁한 선배 지휘자들을 따돌리며 입성했던 베를린필 이후 그가 선택한 오케스트라는 런던 심포니. 2017년 런던 심포니의 캐치프레이즈는 ‘래틀이 돌아왔다’였다.
그런 래틀이 독일로 간다. 이달 11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2023년부터 래틀이 상임 지휘자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래틀은 독일 시민권을 신청했다. 영국은 충격에 빠졌다. 마치 비틀스가 독일 공연장에 전속되는 것 같은 일이므로.
영국인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몇해 전 래틀을 인터뷰했던 필자도 궁금하다. 그렇게 진한 영국 사람이 왜 독일에 갈까? 그는 인터뷰에서 “베를린필에서 농담을 하면 독일인 단원들은 ‘일은 이제 끝이구나’ 하면서 가방을 챙기곤 했다”고 말한 영국인이었다. 이번 발표에서 래틀은 “독일에 가는 건 철저히 개인적”이고 “가족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구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임기를 몇번씩 연장하곤 한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 5년만 머물고 떠나는 것은 유럽에선 ‘사고’에 가까운 일이다. 또한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떠나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아내와 세 아이를 남겨놓고 온 베를린과 뮌헨의 거리는 무려 500㎞. 그래서 갖가지 분석이 나온다. 래틀이 강하게 비판했던 브렉시트가 실질 효력을 가진 직후 래틀이 ‘탈 영국’을 발표한 것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약속도 문제다. 래틀은 런던에 오면서 새 콘서트홀을 약속받았지만 재정 불안정에 따른 공사 기한 연장으로 신뢰가 깨졌다.
래틀의 작별은 문화적 자본의 이동을 보여준다. 고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예술가들도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래틀의 이동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선 한 오케스트라를 5년 이상 이끈 지휘자를 찾는 일이 더 어렵고, 후임 없이 지휘자가 떠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많은 지휘자가 운영과 지원에 실망해 오케스트라를 기약도 없이 떠나가곤 한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올라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지만, 추락은 순식간이다. 문화적 경쟁력도 마찬가지로 오르내린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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