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회적 약자 대변한다는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인권·평등 외치는 진보 진영의 민낯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소속 당 의원 성추행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장혜영 의원에 대한 추행을 인정했고, 당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인권 보호와 성폭력 근절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 온 공당이다. 그런 곳의 대표가 사건 장본인이기에 국민이 받은 충격은 더 크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문제 때문에 서울과 부산에서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마당이라 더욱 당혹스럽기도 하다. 노동자·여성·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구조적 억압과 부조리에 맞선다는 정당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이제 어떤 정치인을, 어떤 정치 집단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
김 전 대표는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행함으로써 명백한 성추행의 가해를 저질렀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정의당은 진상조사를 통해 김 전 대표의 성추행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유사 사건에서 흔히 있었던 은폐·축소 시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만약 그런 일까지 있었다면 정의당은 존립 기반을 송두리째 잃었을 것이다. 당 대표의 성추행 사실만으로도 정의당은 존재 의의에 대한 물음을 고통스럽게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가한 충격이 큰 것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박 전 시장, 오 전 시장에 이어 또다시 진보 진영 정치인이 성폭력을 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생·시민운동 또는 진보 성향 정당 활동을 해 온 유명 정치인들이 국민의 기대와 믿음을 한순간에 실망과 분노로 바꾸는 일이 반복된다. 이들의 잇따른 일탈을 특정 성향 정치 집단의 문제로 보는 것은 일반화 오류에 속할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성 추문은 터진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곳에서,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곳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도덕적 허무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악이다.
김 전 대표의 추행 피해자인 장 의원은 입장문에서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대해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라고 물었다. 진보 표방 정치인들은 인권·평등·정의를 외치며 살았다. 외견상 ‘그럴듯한 삶’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설픈 도덕적 우월감 위에 권력을 얹었으나 타인 존중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이 괴리가 참사를 부른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 그동안 물타기와 음모론으로 두른 보호막도 정치인 성폭력 재생산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시장 감싸기,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대표적 사례다. 장 의원이 말한 ‘처참한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겸허히 살펴봐야 한다. 교훈을 외면하면 실패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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