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맹탕 청문회'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2021. 1. 26. 00: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증인 없고, 박범계 후보자는 '모르쇠'
청문회 무용론..제도 개편 검토해야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는 ‘맹탕·부실 청문회’의 재탕이었다. 3선 여당 의원이 어느 직위보다 정치 중립이 필요한 법무부 장관을 맡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상황이고, 박 후보자는 ‘패스트 트랙 사건’의 피고인이다. 여기에다 재산 신고 누락 및 허위 거래 의혹, 고시생 폭행 시비,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제기한 인사와의 소송전 등 부적격 사유가 계속 추가됐다. 그렇다면 청문회는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 자질을 검증해 법무부 장관 업무 수행에 적합한 인물인지 따지고 가려내는 자리가 돼야 했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증인과 참고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게 결정적 원인이다. 야당은 증인 채택을 여당이 전면 거부했다며 전날 별도의 장외 청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자료 제출마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상당수 의혹이 해명되지 않은 채 청문회는 끝났다. 문제는 ‘모르쇠’로 하루 이틀만 버티면 된다는 식의 이런 요식행위 청문회가 특히 이 정부 들어 습관처럼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전임인 추미애 장관, 그 전임자인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가 모두 같은 패턴이었다. 핵심 쟁점이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관련 증인이나 가족 등의 증인 채택을 여당은 ‘정치 공세에 따른 신청’이란 이유로 모두 거부했다. 정작 박 후보자는 과거 법사위 위원 시절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자료 제출 거부를 맹공했다. 또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료 제출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핵심 견제 수단이다. 이를 무시하는 건 삼권분립이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다. 하지만 청문회 자체는 겉돌고 국회 보고서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은 매번 임명을 강행해 청문회가 끝날 때마다 청문회 무용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인사청문회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데다 청문회 결과는 장관 임명에 법적 걸림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무위원을 청문회 대상으로 확대해 제도화한 게 노무현 정부다. 하지만 현 정부에선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가 역대 가장 많은 30명에 육박한다. 노 정부를 잇는다는 문재인 정부라면 제도를 지금처럼 무력화시킬 게 아니다.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고, 대통령은 청문회 결과를 존중해야 통과의례 청문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사 때마다 논란과 갈등만 일으키고, 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을 찾느라 매번 애를 쓰느니 차제에 여야 합의하에 인사청문회 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