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펀드매니저 440명 "나는 올 상반기 전기차 사고 언택트 판다"
코스피가 과열 우려 속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며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1월 7일 사상 최초로 30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1월 21일 기준 3150선까지 치고 올라왔다. 국내 증시 큰손으로 떠오른 동학개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증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무작정 마음을 놓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단기 과열에 대한 조정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빚투’에 기반한 개인 매수세가 강하다 보니 조정이 찾아오면 후폭풍이 그만큼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혼란스러운 증시지만 투자의 맥은 분명히 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상흔이 아물어가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의 수혜를 볼 수 있는 반도체, 자동차, 화학주 등이 증시를 떠받칠 것으로 기대된다. 매경이코노미가 129개 운용 부서 펀드매니저 440명을 대상으로 올 상반기 포트폴리오 편입 계획을 조사한 결과다.
▶삼성전자, 비중 확대 의견 최다
▷전기차 관련주 러브콜도 잇따라
사상 첫 시가총액 500조원 돌파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 편입 비중을 늘리겠다는 펀드매니저가 244명으로 가장 많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펀드매니저가 매수 의견을 밝혔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1월 11일 9만원을 넘어선 이후 보합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주가 상승률이 20%가 넘지만 여전히 상방이 열려 있다는 평가다.
2년가량 움츠렸던 글로벌 D램 시장이 올해부터 다시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에 진입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필두로 이미지 센서 등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약진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배당 확대 등 지속적인 주주환원정책, 글로벌 경쟁사인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 퀄컴, 대만의 TSMC 등과 비교해 여전히 낮은 밸류에이션도 주가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실적 전망도 나쁘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도 35조9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8조원 이상 증가한 액수다. 올해는 40% 이상 늘어난 50조원 안팎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뒤를 이은 기업은 SK하이닉스로 176명이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했다. 올해 들어 주가 상승률만 놓고 보면 11%로 삼성전자(8.8%)를 앞설 정도로 매수세가 뜨겁다. 특히 외국인이 연초 이후 삼성전자 주식을 2조원어치 넘게 팔면서도 SK하이닉스 주식은 1590억원어치 순매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들어 1분기 메모리 가격 변화가 더욱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고가 줄어든 상황에서 대만 정전 사고로 인해 일부 공급 차질까지 빚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격 협상에서 판매자가 유리해졌다. 예상보다 이른 메모리 가격 반등이 실적과 주가를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와 함께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것은 전기차 관련주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는 비중 확대 의견을 밝힌 펀드매니저가 각각 176명, 32명, 25명이다. 다 합하면 삼성전자에 맞먹는 숫자다. 올해 본격적인 실적 턴어라운드 시작과 전기차 시장점유율 확대, 애플카 이슈를 통한 미래차 가치 재평가 등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신차를 잇달아 선보일 예정인 가운데 실적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현대차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의 2배 이상을 내며 2014년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이 쏟아진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전망치는 6조6395억원으로 전년 대비 1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88명), SK이노베이션(24명), 삼성SDI(23명) 등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도 비중 확대에 무게가 실렸다. 전기차 핵심인 배터리 사업은 국내 정유·화학 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힌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LG화학), 4위(삼성SDI), 6위(SK이노베이션)를 국내 기업이 차지하고 있을 만큼 앞선 기술력을 자랑한다. 특히 LG화학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할해 설립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IPO를 예고했는데, 공모 규모가 10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빅딜로 관심을 모은다.
▶셀트리온·삼바·씨젠, 주가 부담
▷포스코·SK텔레콤도 매력 떨어져
반면 코로나19 수혜를 톡톡히 봤던 언택트 관련주와 바이오주는 외면받았다.
국내 최초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로 관심을 모은 셀트리온은 비중 축소(138명) 의견이 확대(14명)를 크게 앞선다. 항체 치료제 ‘렉키로나주(성분명 레그단비맙)’로 인한 실적 개선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셀트리온이 발표한 임상 2상 결과를 통해 치료제가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효과가 보였다는 점은 확인됐지만, 경쟁 치료제에 비해 더 나은 성능을 보였다고 보기 어렵고 시장 규모 역시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바이오 대장주 삼성바이오로직스(54명)와 코로나19 진단키트로 대박을 낸 씨젠(17명)도 비중 축소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언택트 최대 수혜주로 꼽혀 주가가 크게 올랐던 네이버와 카카오를 바라보는 시선도 썰렁하다. 비중 확대 의견을 낸 펀드매니저는 각각 42명, 37명인데 반해 동일하게 72명의 펀드매니저가 비중 축소 의견을 밝혔다. 실적이나 성장성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주가 상승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 주가가 재차 치고 나갈 계기가 될 만한 뚜렷한 이슈성 모멘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상황”이라며 “공격적 투자에 대한 성과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철강주 포스코는 비중 축소(61명) 의견이 확대(5명)를 크게 앞선다. 지난해 철강 내수는 제조업과 건설 등 주요 전방산업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전년 5320만t보다 약 8% 감소한 4800만t대를 기록했다. 국내 철강 내수가 5000만t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이에 포스코도 지난 2분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올해는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중국을 중심으로 철강 수요가 증가하면서 업황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만년 저평가주’ SK텔레콤도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비중 확대(13명)의 세 배 가까운 32명의 펀드매니저가 축소 의견을 밝혔다. SK텔레콤은 증권가의 호평에도 지난해 증시 호황에서 소외됐다. 지난해 코스피가 28% 가까이 오를 동안 SK텔레콤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4호 (2021.01.27~2021.02.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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