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양평 공공재개발 확정됐는데..입주권 없는 지분 쪼개기 주의보
분양가의 절반만 주고 입주할 수 있는 ‘반값 아파트’가 서울 흑석2구역, 양평13구역, 용두1-6구역 등 공공 재개발 후보지 8곳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1월 15일 공공 재개발 1차 후보지로 ▲동작구 흑석2구역 ▲영등포구 양평13구역 ▲동대문구 용두1-6구역 ▲관악구 봉천13구역 ▲동대문구 신설1구역 ▲영등포구 양평14구역 ▲종로구 신문로2-12구역 ▲강북구 강북5구역 8곳을 선정했다. 지난해 공모에 참여한 70곳(자격 미달 구역 포함) 가운데 이미 정비계획이 수립된 12곳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다.
이번에 공공 재개발 1차 후보지로 지정된 곳은 모두 역세권에 있는 기존 정비구역으로, 재개발 사업이 10년가량 정체돼온 지역이다. 정부는 이들 지역에 대해 규제를 완화해 사업성을 높이고 주민 갈등을 해소하는 대신 공공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연내 정비구역 지정을 마친다는 목표. 정부는 이런 식으로 새 아파트 4700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고 계산한다. 이미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적 있거나 처음부터 정비구역이 아니었던 곳은 올 3월께 최종 대상지 여부가 정해진다. 이를 통해 정부는 공공 재개발로 2023년까지 주택 2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용적률 1.2배로 완화 + 사업 기간 단축
공공 재개발은 LH,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 공공이 정비 사업에 참여해 추진하는 재개발 사업이다.
공공 재개발 대상지가 되면 ‘주택공급활성화지구’로 지정돼 용적률을 법정 상한치의 1.2배(3종 일반주거지역 기준 360%)까지 올려주고 분양가상한제에서도 제외되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공공 재개발 사업이 처음 소개됐을 당시에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에 관심이 저조했지만 정부가 기부채납 비율을 낮추는 사업성을 개선하자 당초 예상보다 인기를 끌었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기부채납 비율이 줄어든 데다 용적률이 완화된 덕분에 임대주택을 짓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발 이익이 예상된다”며 “특히 그간 사업성이 부족해 정비 사업 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의 경우 이번 공공 재개발 시범 사업을 기회로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공공 재개발이 진행되기 전이지만 공공 재개발과 민간 재개발 사업 과정을 비교해보면 각종 인센티브나 진행 속도부터 제법 차이가 난다.
우선 인·허가 과정이 간소화되는 등 각종 행정 지원을 받다 보니 사업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통상 재개발 사업은 최소 10년 이상 보는 사업으로 통한다. 조합설립 시점부터 재개발 사업의 8부 능선인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전까지 건축심의, 경관심의, 교육환경평가, 도시계획심의,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하나 건너 한 단계씩 절차를 밟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반면 공공 재개발은 이런 항목을 한꺼번에 심의받도록 계획돼 있다. 이에 따라 민간 재개발에서 조합설립 시점부터 사업시행인가를 얻어내는 데까지 통상 40개월가량 걸리던 것이 공공 재개발을 통하면 18개월 만에 끝날 수도 있다. 순조롭게만 진행되면 공공 재개발 사업 전체가 5년 이내 완료될 수 있다는 기대도 모은다.
공공 재개발 구역은 조합원 분양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50%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지만 이 역시 나쁘지 않다. 예컨대 전체 가구(100%) 중 조합원 물량 비중이 50%라면 공공임대 20%, 공공지원임대 5%, 일반분양 25%로 나누는 식인데, 상당한 물량을 임대주택으로 돌리는 꼴이지만 기부채납 비율이 50~70%에 달하는 민간 재개발보다는 여전히 유리하다. 게다가 분양가상한제에서 제외된다는 점만으로도 최소한의 사업성은 보장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셈이다.
여기에 공공 재개발을 하면 사업비가 부족해 분담금이 발생할 경우 공공이 부족분을 대납해준다. 민간에서는 조합원이 직접 분담금을 조달해야 한다. 단 여기서 정부는 이들 1차 후보지에 ‘지분형 주택’을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지분형 주택은 주택 분양을 받은 조합원이 여유자금이 부족할 경우 분양가의 50% 이상을 내고 입주한 뒤 나머지는 나중에 매입하는 방식이다. 분양가 50% 이상을 내고 살다가 10년 뒤 나머지 지분을 사들이면 완전한 내 집이 된다. 반대로 기존 지분을 팔 수도 있다. 전용 60㎡ 이하로, 종전 자산 가격이 분양가 이하인 무주택자에게만 신청 자격을 준다.
▶선정된 시범 사업지는 어떤 곳?
▷한강변 알짜 흑석2…광화문 옆도 개발
구체적인 지역을 예로 들어보면 흑석2구역(4만5229㎡)은 흑석뉴타운에서도 한강변에 위치해 노른자위 입지로 통한다. 현재 가구 수가 270여가구에 불과하지만 용도지역이 2종 일반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으로 돼 있는 덕분에 용적률을 450% 이하까지 적용받아 재개발을 마치면 1310가구 주거지로 탈바꿈한다.
양평13구역(2만2411㎡)은 준공업지역이다. 2010년 조합설립도 받아두고 사업시행인가까지 마쳤지만 당시 분양을 해도 수익성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사업이 표류했다. 정부는 이곳 용적률을 기존 250%에서 300%까지 완화해준다. 이런 식으로 현재 389가구 규모인 양평13구역에는 618가구 아파트가 들어선다. 인근 양평14구역(1만1082㎡)도 118가구서 358가구로 늘어난다.
신설1구역(1만1204㎡)의 경우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있어 용적률이 250%밖에 안 됐던 곳. 일반분양 물량을 지어 수익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이곳은 공공 재개발을 통해 용적률을 법적상한의 120%인 300%까지 적용받고 다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이 밖에 용두1-6구역(1만3633㎡)은 432가구서 919가구로, 봉천13구역(1만2272㎡)은 169가구서 357가구로 늘어난다. 강북5구역(1만2870㎡)은 120가구서 680가구로 가구 수가 각각 늘어난다. 광화문광장 바로 앞에 위치한 신문로2-12구역(1248㎡)에는 242가구가 새로 공급된다.
▷성북1구역·한남1구역 기대감 솔솔
정부는 투기를 막기 위해 공공 재개발 후보지들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지만, 난항을 거듭하던 구역 재개발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일부지역은 투자 문의가 부쩍 늘어나는 모습이다. 특히 오는 3월 추가로 지정될 2차 후보지에 미리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2020년도 공모에 참여한 신규구역 56곳 중 도시재생지역 등 공모 대상지가 아닌 곳을 제외한 47곳에 대해서도 3월 말까지 후보지를 선정할 계획. 공공 재개발 심사는 구청에서 소유주 동의율과 주거정비지수 적합성을 따져 대상지를 걸러내는데, 동의율이 높고 시세가 저평가된 지역일수록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수익도 클 가능성이 있다.
공공 재개발 신규구역 신청지 가운데 성북1구역(가칭)은 주민 동의율이 76%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장위9구역(68%), 한남1구역(60%), 원효로1가(56%) 등이 동의율 50%를 웃돈다.
낡은 빌라와 쪽방이 밀집한 성북구 성북1구역은 2001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반대하는 주민이 많고 사업성도 떨어져 아직 구역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재개발 사업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주민 동의율이 높아졌다. 성북1구역 최대 장점은 대지 규모가 넓다는 점이다. 약 12만㎡ 넓이 사업 대상지가 1·2종 일반주거지역이어서 현재 용적률도 145~170%에 불과하다. 공공 재개발을 통한 용적률 혜택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 용적률이 낮을수록 일반분양 물량을 많이 지을 수 있어 수익도 더 커진다. 성북1구역 추진위는 당초 기존 주택을 헐고 아파트 1890가구 규모 재개발을 추진 중이었다.
같은 성북구에서 동북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위9구역, 장위12구역에서도 공공 재개발 기대감이 크다.
장위동 239-83번지 일대 8만5878㎡ 규모인 장위9구역도 일찍이 재개발 사업을 시작해온 곳이다. 2008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뒤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2017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 의지가 컸던 만큼 추진위는 시범 사업지 공모 하루 만에 주민 동의서를 10% 이상 확보해 사전의향서를 제출했다. 장위12구역은 그보다 앞서 2014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는데 최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 왕십리에서 상계역을 잇는 동북선 경전철사업, 복합환승센터 사업이 추진되면서 호재 지역으로 주목받는다.
용산구 이태원1동 일대에 위치한 한남1구역은 총 5개 구역으로 나뉜 한남뉴타운 내에서 유일하게 재개발 사업이 무산된 구역이다. 건축물 높이의 최고 한도가 규제되는 최고고도지구가 전체 사업지의 20%에 달하다 보니 한남뉴타운 내 다른 구역에 비해 사업이 지연됐고, 유독 장사가 잘되던 이태원 상권을 끼고 있어 이태원 대로변 상가 소유주를 중심으로 재개발 반대 여론이 컸다. 2011년 재개발 추진위가 만들어졌지만 이후 사업 진행이 더뎠고 결국 2017년 4월 뉴타운 구역에서 해제됐다.
▶섣부른 투자는 위험?
▷도정법 개정안 통과 여부 관건
일부 지역은 아직 사업지로 최종 선정되기 전이고 정부는 투기를 막기 위해 공공 재개발 후보지들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지만, 난항을 거듭하던 구역 재개발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일부 지역은 투자 문의가 부쩍 늘어나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공공 재개발 사업지로 결정된 것도 없는 데다 관련법 개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여서 섣부른 투자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 재개발 정책의 근거가 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따라서 공공 재개발에 관심이 있다면 어느 시점 주택 거래까지 입주권 대상이 될지는 도정법 개정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또 입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건물 등기일이 ‘권리산정기준일’ 이전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재개발 사업지의 경우 입주권을 많이 받기 위해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짓는 등의 지분 쪼개기가 성행하는데, 무분별한 지분 쪼개기를 막기 위한 제도가 권리산정기준일이다.
도정법에 따르면 최근 후보지로 발표된 8곳의 권리산정기준일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날이다. 예컨대 흑석2구역은 2008년 9월 11일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날 이후, 그러니까 2008년 9월 12일부터 지분 쪼개기를 한 주택 소유자는 입주권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도정법에 따르면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거래된 주택 소유주도 입주권을 부여받을 수 없고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 3월 선정될 신규구역 역시 공모 공고일(지난해 9월 21일) 이후 ‘지분 쪼개기’로 생긴 주소지에 대해서는 입주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예컨대 지난해 9월 22일 이후 기존 단독주택을 허물고 8가구짜리 다세대주택을 새로 짓는다면 8명이 아닌 단독주택 소유주 1명만이 조합원 분양(입주권 부여) 대상자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선정된 공공 재개발 사업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되면 실거주 외 목적으로 주택을 매수할 수 없고 지자체의 매수 허가도 받아야 하는 만큼 진입 장벽이 높아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아직 구체적인 지침이 없으니 앞으로 나올 국토부 발표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물을 매입하기 전 등기일이 권리산정기준일 이전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입주권이 안 나오는 매물을 덜컥 매입하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4호 (2021.01.27~2021.02.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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