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소닉과 LG전자

임상균 2021. 1. 2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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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소학교를 중퇴하고 자전거 공장 등을 전전하던 청년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17년 자그마한 소켓공장을 세운다. 말이 공장이지 오사카 외곽에 살던 셋집을 개조해 만들고 직원은 부인, 처남이 전부였던 ‘공방’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마쓰시타전기’는 일본 최고의 종합전자업체로 성장했고, 설립자 마쓰시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훗날 사명을 ‘파나소닉’으로 바꿔 글로벌 가전 시장도 호령했지만 위세가 100년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파나소닉은 2008년 3800억엔의 적자를 냈고, 2011~2012년에도 연달아 7000억엔대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일본 제조업 몰락의 상징이 됐다. 글로벌 전자산업의 급격한 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한국 전자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진 결과였다.

다행히 파나소닉은 2012년 구원투수로 투입된 쓰가 가즈히로 사장의 도전 덕분에 회생에 성공한다. TV·가전·휴대폰·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기존 주력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자동차용 전장부품, 주택 관련 솔루션 기업용 오디오·비디오 등의 신규 사업을 육성하는 사업 구조 개편에 착수했다. 큰 틀에서 보면 B2C에서 B2B로의 대전환이었다.

한국에서 가전 왕국이었던 LG전자도 고민이 많았다. 휴대폰 사업이 2015년 2분기 이후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오며 지난해까지 5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지난 1월 20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며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MC 사업본부의 전면적 구조 개편을 선언했다.

LG전자는 반면 지난달 캐나다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전기차 시대에 맞춰 전장 사업을 강화하는 포석이다. B2C에서 B2B로 전환하는 파나소닉의 길을 밟는 모양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파나소닉은 사업 구조 전환을 통해 극적인 회생에 성공했다. 대규모 적자였던 순이익이 2013년 1204억엔 흑자로 돌아섰고, 2018년에는 2841억엔까지 늘어났다.

LG는 B2B에 강한 DNA도 갖고 있다. 가전의 경우 50년대 말 시작한 이후 줄곧 GE, 월풀 등의 OEM 생산기지였다. LG 휴대폰이 흔들리자 디스플레이, 이노텍 등 나머지 전자부품 계열사들은 독자 생존에 나서며 애플이라는 초대형 고객을 개척했다. LG화학은 세계 최고2차 전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사업 구조 재편만으로 LG전자의 턴어라운드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파나소닉은 사업 재편과 함께 처절한 인력 감축도 병행했다. 2010년 38만명이었던 임직원을 2014년 27만명으로 11만명 줄였다. 이 중 9만명은 하이얼로 매각된 산요의 임직원이었지만, 이를 빼고도 2만명을 내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LG도 휴대폰 사업이 매각되지 않을 경우 인력 처리에 결단이 불가피할 것이다.

더 큰 과제는 ‘혁신’의 능력을 갖출지다. 파나소닉이 회생에 성공했다지만 시장의 평가를 냉정하다. 주가만 봐도 6년째 700~1700엔의 박스권을 맴돌고 있다. 사실 파나소닉의 새로운 B2B 사업 대부분은 기존에 영위했거나 자회사에서 넘겨받은 사업들이었다. LG전자도 ‘개선’의 실력은 발휘했지만 ‘혁신’의 성과를 보여준 것은 없었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4호 (2021.01.27~2021.02.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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