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공허한가요? 속이 텅 빈 남자의 이야기
[이정희 기자]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안녕하신가요? 마음, 그게 문제입니다. 그 손에 잡히지도 않은 마음이 우리 자신을 사로잡아버려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아니 멀쩡하게 남들 다하는 거 하면서 살아가는 거 같지만 내 속에서는 시베리아 바람이 휘몰아치기도 합니다. 밥 잘 먹고 일 잘하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그 마음이란 게 도통 내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 이거 참 난감하지요.
20세기에 들어 등장한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바로 그 마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의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이란 영역을 드러내었죠. 프로이트 이래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갖가지 처방과 방법을 강구해왔습니다.
그 전이라고 '마음'의 문제가 없었을까요. 하지만 '종교'적 영역이 전 사회를 지배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개인보다는 집단, 개인의 의식보다는 종교나 집단의 의식이 지배적이었기에 '내 마음'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
ⓒ 그림책 공작소 |
마음으로 읽는 그림책
아동 도서의 노벨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카타리나 소브럴의 그림책 <안녕하세요>는 바로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자는 한 자도 없지만 저마다의 마음으로 읽어내야 하기에 더 풍성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림책은 <안녕하세요>지만, 원제는 vazio, 책 내용 그대로 '공허함'이라는 뜻입니다. 'vazio'라는 말에 걸맞게 표지부터 속이 텅 빈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집 거울을 보고 스스로 자신을 색칠해보는 사람, 그런데 그 색칠이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나 봅니다. 다음날 그 사람은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사람의 텅 빈 마음을 진단할 수 있을까요?
여기저기 진찰도 해보고, 의학 서적도 뒤적여보고, 다른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문도 해보고, 각종 검사도 해보지만 병원을 나와서 마트로 향한 그 사람이 여전한 걸 보면 현대 의학의 도움이 그닥 소용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텅 빈 사람은 자신을 채우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봅니다.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자연에 자신을 맡겨보기도 합니다. 미술관에 가보기도 하지요. 새도 키워봐요. 그런데 그 시도들이 여전히 성공적이지 못한 듯합니다.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거리에 서있는 그 사람에게 채워져가는 빗물이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처럼 마음이 아프네요. 도대체 이 사람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있기는 있을까요?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허전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사람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거리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기 맞은 편에 그 사람처럼 텅 빈 또 한 사람이 책에 얼굴을 박은 채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땅에 시선을 둔 남자 사람, 그리고 책에 시선을 빼앗긴 여자 사람, 두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겹쳐진 두 사람의 심장은 하트 모양으로 모양을 드러냅니다.
▲ 안녕하세요 |
ⓒ 그림책 공작소 |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과연 하트로 만난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여기까지 그림책을 본 독자들은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그동안 텅 빈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애써왔던 그 남자가 시도해 보지 않은 해법이 무엇인지를요. 사회적 동물인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건 결국 또 다른 사람, '관계'라는 것을 그림책은 돌고 돌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제 텅 빈 마음을 울리는 뜨거운 심장을 깨닫게 된 남자 사람은 자신과 하트를 이뤘던 그 여자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까요? 만나게 될 지 어떨지는 두 사람의 '인연'에 달렸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병원도 가보고, 자연으로, 전시회로 갖가지 방법으로 애를 써왔던 남자 사람의 노력이라면 아마도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요? 아니 꼭 그 여자 사람이 아니더라도 남자 사람은 이제 알게 되었을 겁니다.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한 '치료제'가 무엇인가를 말이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사회적 격리'로 인해 분리된 생활은 우리들에게 존재론적 짐을 하나 더 안겨주었습니다. 안그래도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버거웠는데 시절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온기를 전해 줄 타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계기가 된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녕하세요>는 이 시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림책인 거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
ⓒ 그림책 공작소 |
우리는 살아가며 '공허'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며 살아갑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그 지금의 재미없음, 공허함은 그 남자를 의사가 치료할 수 없듯이 '병'이 아닙니다. 비어있음은 '결핍'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채워짐'을 위한 공간의 여유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채우기 위해 노력했으니 결국 마음의 붉은 불이 켜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듯이 우리도 우리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애쓴다면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울 방도를 찾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저 역시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커가며 '빈둥지 증후군'과 같은 증상을 겪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하는 일이 줄어들자 고립된 생활이 주는 우울감은 더욱 깊어졌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그 시간 이후 저에게 온 '인연'들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사소할지도 모를 관계의 메시지가 주는 온기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되풀이 되는 일상의 어느 아침 카톡이 울렸습니다. 빨래를 널다가 문득 제가 생각났다는 지인의 한 마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해 저무는 저녁 무렵 저의 안부를 물어주는 전화 한 통화의 고마움은 어떻구요. 연례적으로 보내던 새해 카톡에 답이라도 하듯 아주 오랜만에 자신이 쓴 글을 올려주며 프로필 사진의 제가 언제 그렇게 늙었냐는 선배의 걱정이 씁쓸하기는커녕 여전히 나를 몇 십년 전의 후배로 기억해주시는 마음에 감사했습니다.
매주 매달 잊지 않고 만남을 이어가는 관계들이 지금의 내 마음을 채워주고, 내 심장을 여전히 뛰도록 만들어 주는 동력이라는 것을 '격리'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소중하게 느꼈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빗물로 채워지는 자신의 텅 빈 마음에 한량없는 쓸쓸함을 느끼고 계신 건 아닌지요. 혹시 이미 당신의 심장을 뜨겁게 뛰도록 만들 하트의 심장이 스쳐지나갔는데 깨닫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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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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