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공허한가요? 속이 텅 빈 남자의 이야기

이정희 입력 2021. 1. 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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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그림책 여행] 카타리나 소브럴의 그림책 '안녕하세요'

[이정희 기자]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안녕하신가요? 마음, 그게 문제입니다. 그 손에 잡히지도 않은 마음이 우리 자신을 사로잡아버려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아니 멀쩡하게 남들 다하는 거 하면서 살아가는 거 같지만 내 속에서는 시베리아 바람이 휘몰아치기도 합니다. 밥 잘 먹고 일 잘하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그 마음이란 게 도통 내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 이거 참 난감하지요. 

20세기에 들어 등장한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바로 그 마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의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이란 영역을 드러내었죠. 프로이트 이래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갖가지 처방과 방법을 강구해왔습니다.

그 전이라고 '마음'의 문제가 없었을까요. 하지만 '종교'적 영역이 전 사회를 지배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개인보다는 집단, 개인의 의식보다는 종교나 집단의 의식이 지배적이었기에 '내 마음'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개인은 '공동체적 삶'에서 풀려나 원자화된 존재로 살아가게 되었고, 그와 함께 고립된 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고민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 그림책 공작소
 
마음으로 읽는 그림책 

아동 도서의 노벨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카타리나 소브럴의 그림책 <안녕하세요>는 바로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자는 한 자도 없지만 저마다의 마음으로 읽어내야 하기에 더 풍성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림책은 <안녕하세요>지만, 원제는 vazio, 책 내용 그대로 '공허함'이라는 뜻입니다. 'vazio'라는 말에 걸맞게 표지부터 속이 텅 빈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집 거울을 보고 스스로 자신을 색칠해보는 사람, 그런데 그 색칠이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나 봅니다. 다음날 그 사람은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사람의 텅 빈 마음을 진단할 수 있을까요?

여기저기 진찰도 해보고, 의학 서적도 뒤적여보고, 다른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문도 해보고, 각종 검사도 해보지만 병원을 나와서 마트로 향한 그 사람이 여전한 걸 보면 현대 의학의 도움이 그닥 소용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텅 빈 사람은 자신을 채우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봅니다.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자연에 자신을 맡겨보기도 합니다. 미술관에 가보기도 하지요. 새도 키워봐요. 그런데 그 시도들이 여전히 성공적이지 못한 듯합니다.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거리에 서있는 그 사람에게 채워져가는 빗물이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처럼 마음이 아프네요. 도대체 이 사람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있기는 있을까요?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허전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사람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거리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기 맞은 편에 그 사람처럼 텅 빈 또 한 사람이 책에 얼굴을 박은 채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땅에 시선을 둔 남자 사람, 그리고 책에 시선을 빼앗긴 여자 사람, 두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겹쳐진 두 사람의 심장은 하트 모양으로 모양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의 심장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를 비껴 지나갑니다. 스쳐지나가고서야 남자는 깨달아요. 텅 비었던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심장이 뜨겁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안녕하세요
ⓒ 그림책 공작소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과연 하트로 만난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여기까지 그림책을 본 독자들은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그동안 텅 빈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애써왔던 그 남자가 시도해 보지 않은 해법이 무엇인지를요. 사회적 동물인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건 결국 또 다른 사람, '관계'라는 것을 그림책은 돌고 돌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제 텅 빈 마음을 울리는 뜨거운 심장을 깨닫게 된 남자 사람은 자신과 하트를 이뤘던 그 여자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까요? 만나게 될 지 어떨지는 두 사람의 '인연'에 달렸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병원도 가보고, 자연으로, 전시회로 갖가지 방법으로 애를 써왔던 남자 사람의 노력이라면 아마도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요? 아니 꼭 그 여자 사람이 아니더라도 남자 사람은 이제 알게 되었을 겁니다.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한 '치료제'가 무엇인가를 말이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사회적 격리'로 인해 분리된 생활은 우리들에게 존재론적 짐을 하나 더 안겨주었습니다. 안그래도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버거웠는데 시절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온기를 전해 줄 타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계기가 된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녕하세요>는 이 시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림책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상하게 저는 <안녕하세요>의 그 텅 빈 남자가 나쁘지만은 않게 다가왔습니다. '비어있음'이 있기에, '채워짐'의 시간이 온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와 함께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옷으로 가리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 많든 적든 '비어있음'을 지니고 살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 그림책 공작소
 
우리는 살아가며 '공허'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며 살아갑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그 지금의 재미없음, 공허함은 그 남자를 의사가 치료할 수 없듯이 '병'이 아닙니다. 비어있음은 '결핍'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채워짐'을 위한 공간의 여유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채우기 위해 노력했으니 결국 마음의 붉은 불이 켜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듯이 우리도 우리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애쓴다면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울 방도를 찾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저 역시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커가며  '빈둥지 증후군'과 같은 증상을 겪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하는 일이 줄어들자 고립된 생활이 주는 우울감은 더욱 깊어졌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그 시간 이후 저에게 온 '인연'들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사소할지도 모를 관계의 메시지가 주는 온기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되풀이 되는 일상의 어느 아침 카톡이 울렸습니다. 빨래를 널다가 문득 제가 생각났다는 지인의 한 마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해 저무는 저녁 무렵 저의 안부를 물어주는 전화 한 통화의 고마움은 어떻구요. 연례적으로 보내던 새해 카톡에 답이라도 하듯 아주 오랜만에 자신이 쓴 글을 올려주며 프로필 사진의 제가 언제 그렇게 늙었냐는 선배의 걱정이 씁쓸하기는커녕 여전히 나를 몇 십년 전의 후배로 기억해주시는 마음에 감사했습니다. 

매주 매달 잊지 않고 만남을 이어가는 관계들이 지금의 내 마음을 채워주고, 내 심장을 여전히 뛰도록 만들어 주는 동력이라는 것을 '격리'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소중하게 느꼈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빗물로 채워지는 자신의 텅 빈 마음에 한량없는 쓸쓸함을 느끼고 계신 건 아닌지요. 혹시 이미 당신의 심장을 뜨겁게 뛰도록 만들 하트의 심장이 스쳐지나갔는데 깨닫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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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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