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픽사 김재형 애니메이터 "'소울'에 한국어가 왜 나왔냐고요?"
전 세계를 치유하고 있는 디즈니·픽사의 신작 영화 '소울(피트 닥터 감독)'에 한국이 담겼다. 지난 20일 개봉해 23일까지 2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울'. 기적과도 같은 이 영화에는 한국어 대사와 한글 간판이 깜짝 등장해 반가운 마음을 안겨준다. 이 '한국의 흔적'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제작에 참여하며 '소울'의 힐링을 함께 만들어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해 의사로 일하다가 꿈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일하다 2008년부터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 스튜디오에 입사해 '업'과 '인사이드 아웃' 등 전 세계 관객들을 감동시킨 작품의 캐릭터를 개발했다. '소울'의 개봉을 기념해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한국 관객들이 힐링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픽사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나.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다. 캐릭터 애니메이터들은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캐릭터를 연기하게 만들고 움직이고 여러 가지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들이다."
-연세대 의과대학 출신인데 애니메이터가 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의대를 들어가고 졸업한 후 병원에서 일을 하는 것들은 정해진 순서다. 일단 들어가면 대부분 그 길을 가야 한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 생각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계속 (의사) 일을 하면서 점점 일에 대해 열의가 줄어들게 됐다. 결과도 만족할 만한 것들이 잘 안 나왔다. 왜 그런지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결국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내가 처음부터 결정해서 일을 선택해 할 수 있다면 오랫동안 즐겁게, 돟은 결과가 나오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병원을 그만두고 나와서 어떤 것이 좋을지 계속 생각했다. 이전에 취미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 휴학하고 공부도 했던 게 애니메이션 분야다. 그걸 계속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공부했다."
-지금 일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사실 쉽지는 않다. 직장에서도 치열한 부분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균적으로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후회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매일이 좋고 이렇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항상 즐거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울'에 한국어 대사가 나와 깜짝 놀랐다. "우리 회사에 스토리를 담당하는 부서에도 재미교포 친구가 있다. 그 장면에서 여러 나라 말들이 나오니까, (한국어가 나오는) 스토리를 제안하고 그 친구의 목소리를 임시 녹음했었다. 그 목소리가 나쁘지 않아서 다시 녹음해서 완성본에도 썼다."
-캐릭터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가상의 캐릭터이지만, 이미 스토리 라인이 나와있다. 감독이 원하는 캐릭터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성격이고, 어떤 연기가 나왔으면 좋겠는지 분명하게 정해져있다. 최대한 맞춰서 잘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미리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작업이 시작되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애니메이터들도 나름대로 해석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 그걸 적용해서 살을 붙인다. 후반부에 가면 그럴 듯한,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를 만들게 된다."
-'소울'의 주력 캐릭터는 누구인가. "나는 이 영화의 극 초반부터 작업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메인 캐릭터는 이미 개발이 된 단계였다. 내가 들어가서 처음 프로덕션에서 작업할 때 장면이 피아노 오디션 대목이다. 피아노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하고 시작했다. 특히나 재즈 뮤지션이나 피아노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하며 작업했다. 테스트용으로 피아노 연주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감독님에게 보여주고 상의했다. 흑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문화적인 것에서 나오는 제스처나 표정이 제대로 보여져야 했다. 실제 그런 배경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도 상의하고 흑인인 공동 감독님과도 이야기했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소울'은 어떤 의미인가. "피트 닥터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같이 작업하게 돼 기뻤다. 사실 스토리를 처음 받아봤을 때 '너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완성된 것보다도 조금 더 어둡고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조금씩 수정하면서 현재의 스토리가 완성됐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힐링 포인트가 있고, 그런 부분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보람 있다. 나 또한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과정을 살면서 겪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야할지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보여줘서 의미가 남달랐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남자이고, 이미 자기의 직장이 있고, 자기 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건 (피트 닥터 감독) 자신의 여정을 많이 투영했던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건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고 한다. 결국은 가족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희생하며 작업한 것만큼, 결국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나에겐 다 이룬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듯한 어두운 부분도 보이기도 했다. 영화가 진행되며 수정되며 희망을 주고 쉬어가는 부분이 많이 생겼다. 오히려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울'이 어떤 위로를 주나. "미국에서는 극장이 아예 열지를 않는다. 디즈니 플러스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만 했다. 보통 픽사 영화라고 하면 연령대가 넓다. 이번 영화의 반응을 보며 놀란 것이, 극장 개봉이 제일 보람되긴 하지만, 집에서 온 가족이 같이 봤더라. 이전보다도 연령대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감상평을 남긴다. '힘든 시기에 많이 힐링됐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고, 한편으로는 '어렵긴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픽사의 시스템은 어떤지 궁금하다. "수평적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그것의 단점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너무나 많은 사람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이게 가능할지' 매번 생각한다. 그런데, 픽사에는 어느 정도 수준의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미 모여있다. 다른 의견도 내지만, 픽사에 뽑힌 사람이라면 책임감 있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다. 그걸 하나라도 허투루 듣지 않고 듣게 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밸런스도 중요하다. 의견을 들어주되 결정은 감독이 하는 거다. 모든 의견을 차단하거나 결정하지 않고 최대한 들으며 결정한다. 끝까지 원칙을 어기지 않고 지킨다."
-본인을 비롯해 업계에서 한국인이 활약하고 있나. "많이 늘었다. 미국에서는 일을 하는 것에는 실력 이상으로 제도적, 법적인 제약이 많다. 정말 실력이 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친구도 많이 봤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많이들 진출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끔 접하는 결과물을 보면 굉장히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가장 애정하는 픽사 작품은 무엇인가. "이 영화 이전까지는 '업'이나 '몬스터 주식회사' '인사이드아웃' 등 피트 닥터 감독의 영화를 가장 좋아했다. 이 영화가 끝나서 하나가 더 추가됐다. 딱 한두개를 뽑으라면, '업'과 '소울'이다."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상황이 좋지 않지만, 즐겁게 보시고 이 어려운 시기에 힐링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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