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출생신고 위해..엄마는 성씨 만들어 '1대 시조' 됐다
“우리 아가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데….” 수화기 너머 젊은 엄마는 울먹였다. 지난 2018년 4월, 경기도에 사는 서윤양(가명·당시 17세)과 정이수 변호사의 첫 전화통화 순간이다. 미성년자인 미혼모였던 서윤양은 “아들을 낳았는데 출생신고를 못 해 한 달 안에 맞아야 할 예방접종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각종 예방접종이나 영유아 검진 등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예방접종을 쉽게 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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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된 미혼모의 딸
서윤양의 슬픔은 18년 전인 2000년 본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 자신이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곧바로 입양기관에 맡겨졌다. 어머니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처지”라며 연락처만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이후 서윤양은 돌이 지나기 전 한 부부에게 입양이 됐다. 이른 시간에 보금자리를 찾아 순탄한 삶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양부모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다투는 날이 늘었고 양부모는 훈육을 이유로 다른 가정(삼촌 집)에 서윤양을 맡겼다. 가족 간의 사이는 더 벌어졌다.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자 2017년 양부모는 결국 입양을 포기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서윤양도 원했던 파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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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못 하는 ‘무적(無籍)’ 엄마
파양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양부모가 서윤양을 친자로 등록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부모가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서윤양은 가족관계등록부에 존재하지 않는 ‘무적’ 신분이 됐다.
주민등록은 말소되지 않아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들을 낳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8년 사실혼 관계였던 또래 남성과의 사이에 아들이 생긴 것이다.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지 않은 미성년 엄마는 혼인신고는 물론 아들의 출생신고도 할 수가 없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외 출생자의 신고는 엄마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이 아빠는 아이 엄마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법정대리인인 친권자나 후견인도 없었던 서윤양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입양 기관에 남겨진 친모의 연락처도 다른 이의 번호가 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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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위해 ‘시조(始祖)’가 된 엄마
아들이 엄마와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되자 서윤양은 파양 과정에서 알게 된 ‘변호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이수 변호사는 서윤양 모자를 사회로 진입시킬 길을 찾기로 했다. 서윤양이 부모와 양부모 어느 쪽에서도 받지 못한 성과 본을 창설하기로 했다. 성의 발음은 양아버지의 것과 같지만, 서윤양이 ‘시조(始祖)’인 새로운 본관의 성을 만들어 가족관계 등록을 하기로 한 것이다.
정 변호사는 법원에 성과 본의 창설 허가 심판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허가해 ‘○○ ◇씨’라는 본관이 탄생했다. 이후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기 위한 심판에서도 법원은 가족관계 등록 창설을 허가했다. 서윤양이 그토록 그리던 가족관계등록부 기재와 아들의 출생신고가 모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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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부모에게 일임 안 돼”
서윤양의 사례처럼 미등록 아동의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부모에게 일임하는 현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이수 변호사는 “서윤양 사례는 법원에 사정을 말하고 빠른 진행을 요청해 1주일 만에 각 심판 결과가 나온 이례적인 경우”라며 “현행 출생신고제는 부모의 역량과 상황, 법적 제약 여부가 아이의 운명을 가른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아이가 존재 자체로 입증이 된다면 가족관계등록이나 주민등록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 즉시 공공기관에 즉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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