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국가가 할 일
코로나19가 갑작스레 온 지 1년이 넘어간다. 언론사도 경영 타격이 있었다. 복지, 추가 수당 등에 대한 조정은 있었지만 다행히 심각한 구조조정은 없었다. 직장인으로서 매달 비슷한 임금을 받는 대신 무척 바빴다는 정도의 변화만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다. 최근 자영업자가 된 엄마 아빠의 일상은 매우 요동쳤다. 부모님이 이어받은 사업장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월 매출이 무려 93% 감소한 상태였다. 사업 시작 후 월 매출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운명을 같이했다. 하루 사이에도 매출 격차가 3배씩 났다. 매주 정부의 방역조치 결정을 나는 재택근무 차원에서 확인했지만, 부모님은 마음을 졸이며 살펴봤다. 월수입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코로나19는 개인마다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같은 가족 내에서도 피해 여부가 갈린다. 충격이 큰 곳(자영업·서비스업 등)과 덜한 곳(일반 업종), 수혜 업종(비대면 사업 등)의 차이가 명확하다. 업종별 월 소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양극화가 커진다. 그리고 부동산·주식시장 과열은 더 심각한 자산 격차까지 불러오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순자산 지니계수를 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0.602다. 2013년(0.605)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다. 소득은 줄고, 자산 격차는 더 커지는 ‘더블 불균형’ 시대가 오고 있다.
감염병은 예측해 대응할 수 없다. 당분간 심각한 격차를 평평하게 메꿀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국가다. 코로나19가 큰 정부 시대를 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던 이유다. 특히 방역으로 간접적인 지원이 어렵게 되자 피해 계층에 직접 돈을 꽂아주는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재정 팽창 시대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총 554조9000억원(본예산+1~4차 추가경정예산)의 지출을 했다. 올해도 558조원 본예산을 책정했지만 여전히 피해를 메꾸는 데 역부족이다. 취업자의 약 20%를 차지하면서 약자가 가득한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국가가 또 나서야 한다. 방법은 그뿐이다. 결국 ‘얼마나 국가가 돈을 쓸 수 있는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미국 일본 등 경제 규모가 크고 기축통화국인 나라들처럼 나랏빚을 한없이 늘리기도 어렵다.
이를 두고 당청은 최근 이익공유제를 꺼냈다.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으니 이른바 코로나19 승자가 돈을 좀 내라는 발상이다. 나같이 피해가 덜한 계층, 이 기회에 돈을 번 계층이 부담을 나누는 것은 옳다. 하지만 국가가 공개적으로 패자와 승자를 나눈 후 이득을 내놓으라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국가가 도리어 격차를 조장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과정은 정상적이지 않다.
여권은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수십조원의 법안도 추진 중이다. 지원은 찬성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재원 마련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알아서 하든지 기금을 만들든지 하라는 등 무책임한 발언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이견은 없다. 그렇지만 최근 논의는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돈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와 사회적 합의 등 어려운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를 회피하다 보니 ‘돈을 써라, 재원 마련은 알아서 해라’ 등 3자 화법이 가득하다.
왜 다들 정공법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당장 나부터 피해를 입은 이웃을 위한다고 하면 기꺼이 내 것을 내놓을 의향이 있다. 표(票) 떨어지는 소리가 싫어 왜곡된 방법을 자꾸 추진하면 ‘불신→사회적 합의 불가능’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국가가 이 시기에 진짜 할 일은 돈이 필요하니 이해를 해 달라는 설득이다. 지금 쓸 테니 나중에 갚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정직하게 말하면 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장롱 속 금까지 내놓은 국민들이다. 꼼수 없이 진정성 있게 말하면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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