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해석·입담 '고우영 삼국지'.. 43년 만에 컬러옷 단장

김현길 2021. 1. 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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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을 보면 애틋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 아팠을지 느껴집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고(故) 고우영 화백의 차남 고성언 실장은 '고우영 삼국지' 1권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은 작품에 색을 입힌 것은 고 화백의 차남 고성언 고우영화실 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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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고성언씨 컬러판 재출간
"유신말 검열로 무더기 잘려나가.. 아버진 관우·조조를 높게 평가"
고(故) 고우영 화백의 차남 고성언 실장이 지난 21일 경기도 김포시 사무실에서 ‘고우영 삼국지’ 캐릭터 조조(왼쪽), 유비와 포즈를 취했다. 고 화백은 삼국지에서 유비를 자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쪼다’로 표현하기도 했다. 고 실장 뒤로 고 화백이 생전에 남긴 원고가 작품별로 보관돼있다. 김포=권현구 기자


“작가의 말을 보면 애틋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 아팠을지 느껴집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고(故) 고우영 화백의 차남 고성언 실장은 ‘고우영 삼국지’ 1권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최초 신문 연재(1978~1980년) 당시 검열로 인해 무더기로 잘려나갔던 고우영 삼국지는 2002년 완전한 모습으로 재출간됐다. 당시 고 화백은 작품을 아이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당시 군용 트럭 비슷한 것에 깔려 팔 다리 몸통이 갈가리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비 되는 내가 애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절통했던 것은 그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는 사실이다.”

24년 만에 본래 모습을 되찾은 ‘고우영 삼국지’가 2021년 들어 컬러판으로 새단장했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은 작품에 색을 입힌 것은 고 화백의 차남 고성언 고우영화실 실장이다. 2008년 컬러로 신문에 연재하다 중단됐으나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완성시켰다. 지난 21일 경기도 김포시 사무실에서 고 실장을 만났다.

‘고우영 삼국지’는 또 하나의 판본이다. 원작을 따라가면서 고 화백만의 독특한 해석과 입담이 더해졌다. 해석의 과감함과 자유로움, 위트는 이후 나온 만화 삼국지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 실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를 접하시고 많이 좋아하셨는데, 본인 머릿속에 삼국지가 완전히 들어 있었던 거죠. 연재를 하시면서 양념도 치고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채워 넣어 각색이 된 거죠.”

헤밍웨이를 우상으로 꼽을 정도로 문학가를 꿈꾼 고 화백의 강점이 반영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아버지 작품 특징으로 그림과 함께 글을 많이 꼽는데, 인물 간의 관계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돼있는 건 문학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고우영 삼국지는 인물 및 사건 묘사에서 그 전과 다른 점이 많았다. 제갈량과 관우의 관계가 대표적인데, 고 화백은 둘을 경쟁 관계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제갈량이 관우의 죽음을 방조한 것으로 그렸다.

수많은 인물이 나오는 삼국지에서 고 화백은 어떤 인물에 끌렸을까. 관우 묘사에 공을 들이고, 이름 ‘우’의 한자가 자신과 같다고 작품에서 묘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 실장은 아버지가 관우와 함께 조조를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조조에 대해서 남자답고 리더의 본보기라며 좋게 보셨다”고 말했다. 고 실장은 작품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아버지 분위기가 드러나요. 아버지가 이때 이렇게 생각하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물들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고우영 화실에는 고 화백이 남긴 원고가 작품별로 상자에 담겨 한쪽 벽면을 넓게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작업은 아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고 화백이 작업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얇은 펜을 잉크에 찍은 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인물들이 나오는데, 저에게는 마술 같았습니다.”

김포=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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