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층간소음의 해법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무렵 얘기다. 겨울철 집에만 머물던 두 딸은 종일 방안을 뛰어다녔다. 곧 아래층 가족이 정중하게 고통을 호소했다. 기자도 위층 소음에 시달렸던 적 있던 터라 죄송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해결하진 못했다. “뛰면 안 돼”란 말을 입에 달고 지내도, 방과 거실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도 소용없었다. 호통을 쳐도 그때뿐, 금세 애들은 매트 없는 바닥에서 뛰고 있었다.
아래층 노부부는 훨씬 지혜로웠다. 어느 날 현관 앞에 두툼한 분홍색 슬리퍼 두 켤레와 “집에서 신으면 좋겠다”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딸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제 발밑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 후론 아래층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인사했다. 시키지 않아도 “뛰어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물론 소음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어도 이웃 사이 갈등이 더 커지지는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의 확산으로 층간소음 갈등도 늘어났다. 환경공단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화 상담(4만 2250건)이 전년보다 60%가량 늘었다. 재택근무, 원격수업의 확대로 어른도 애들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탓이다. 최근 연예인 가족과 이웃의 분쟁에 쏠렸던 관심도 ‘코로나 시국’에 가중된 층간소음 고통이 반영된 거 아닐까.
문제는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거다. 아무리 신경 써서 아파트를 지어도 층간소음을 100% 해소하는 건 불가능하다. 새로운 소음저감 기술이 나오고 있어도 이미 지은 아파트엔 적용할 수 없다. 법·제도도 여의치 않다. ‘관리사무소의 중재→전문기관의 상담·측정→분쟁조정 신청’에만 1년 넘게 걸린다. 이렇게 길어지면 소음 문제는 이미 당사자 간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된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공동체에 주목한다. 소음분쟁을 주로 다루는 이승태 변호사는 “학교에 있는 학교폭력위원회처럼 아파트마다 층간소음위원회를 두자”고 제안했다. 이웃 주민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을 주선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맡기자는 거다. 실제로 층간소음위원회가 활발한 경기도 광명시는 다른 수도권 신도시보다 분쟁이 적은 편이다. 위원으로 참여했던 주민들은 “다툼이 커지기 전에 이웃과 함께 만나면 불같이 화내던 이도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전했다.
층간소음은 건축공법, 법·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파트란 주거형태에 걸맞은 공동체 문화의 부재, 공동체 예절의 공백 탓에 커지는 갈등이다. 멀고 더디게 보일지라도, 주민 자치를 권장하고 이웃을 존중하는 문화를 키우는 게 제대로 된 해결책이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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