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공짜로 바뀔까
“돈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한 게 없다.” 사상 처음 무패로 다섯 체급을 제패한 권투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명언이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 이후 나온 정부 대책을 보며 이 말이 떠올랐다. 지난해 10월 생후 16개월이던 정인이가 입양된 지 1년도 안 돼서 아동학대에 의해 숨을 거뒀다. 그대로 잊힐 뻔한 사건은 뒤늦은 언론의 관심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국민의 공분을 샀다.
대책이 쏟아졌다. 올해 1월 김창룡 경찰청장은 사건 부실 대응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관할 경찰서 서장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지난 14일 검찰은 정인이를 살해한 양모의 혐의를 아동학대치사죄에서 살인죄로 바꿨다. 보통 살인죄의 양형 기준은 10~16년으로, 최고 7년인 아동학대치사 죄보다 처벌 수위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련 대책으로 “입양을 취소하거나, 입양 아동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21일 대법원에서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아동학대범죄 양형기준 높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선 제안서를 제출했다.
관할 경찰서장은 지난해 1월 부임했고 정인이 사건 자체를 보고받지 못했다. 이 경찰서장이 대기발령을 받는다고 아동학대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문 대통령이 말한 대책도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다. 자칫 학대의 원인이 입양아동에게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 발언 직후 바로 논란에 휘말렸다. 양형기준을 올리면 범죄율이 낮아질 수도 있지만, 효과가 얼마나 지속할지는 모른다.
일련의 대책에서 ‘돈 얘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양형을 늘리고 경찰을 징계하고 입양 절차를 바꾸는 건 딱히 큰돈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학대당한 아동을 분리할 수 있는 시설을 짓고, 담당 인력을 늘리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예산이다. 하지만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부족하고 불안정하다. 대부분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일반회계가 아닌 벌금이나 복권 판매 수익금 등에 의존한다. 올해 전체 예산 중 복지부 일반회계는 4% 정도고 나머진 법무부 벌금 예산이나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에서 충당한다. 지난해 예산은 총 296억5900만원으로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82조5269억원)의 0.03% 수준이었다. 올해 복지부 예산은 지난해보다 8.5% 늘었지만, 이 가운데 아동·보육 분야는 겨우 0.6% 증가했다.
사건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란 말이 이어졌다. 천안에서 9살 아이가 가방에 갇혀 숨진 게 불과 6개월 전이다. 정인양처럼 이미 신고된 경력이 있는 아이였고 가해자는 살인죄 적용을 받았다. 의문이 든다. 공짜로 바뀔까.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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