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유시민 사과마저 싸가지 없다

오병상 2021. 1. 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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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운동권 전설 유시민..항소이유서 명문장으로 유명
조국 사태 이후엔 '음모론' 선동..사과문 내용도 여전히 오만
고양 덕양갑 재선에서 당선한 유시민 개혁당 의원(左)이 2003년 4월 29일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선서를 하려 하자 일부 의원이 복장을 문제삼아 선서가 불발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1. 개인적으로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전두환의 5공화국이 정식출범한 1981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유시민’이란 이름이 전설처럼 돌아다니더군요. ‘민주화의 봄’이라 불리는 1980년초 몇달간 서울대 운동권 리더였던 유시민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해박한 지식, 유려한 달변, 선명한 투쟁성까지..
당시 유시민은 군부정권에 잡혀가 고문받고 강제징집으로 끌려간 상황이라 마치 무슨 순교자 느낌이었습니다. 2. 유시민에 실망한 것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입니다.
복학생대표 유시민이 당시 서울대학생회 간부들이 가짜 서울대학생을 붙잡아 감금폭행한 사건에 연루됐습니다. 가짜학생은 운동권을 감시하던 정보기관의 끄나풀(프락치)로 의심받았습니다. 프락치인지는 불학실합니다. 그래서‘서울대생 민간인폭행사건’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유시민이 직접 폭행을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감금과 폭행을 묵인했습니다. 3. 유시민에 대한 실망감을 씻어준 건 그의‘항소이유서’입니다.
프락치 사건 1심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본인이 직접 쓴‘항소이유서’는 1985년 당시 운동권의 필독 팜플렛이었습니다. 몰래 필사해 돌려보면서 그의 정연한 논리와 화려한 글솜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기본적으로 폭력을 비판하면서도..군부독재하 불가피한 저항으로 옹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4. 유시민이 정치권에 등장해 싸가지 없는 행보를 계속할 때도 신선했습니다.
2003년 보궐선거에 당선돼 첫 등원 날 ‘빽바지’(흰색 면바지)로 물의를 빚었죠. 정장 양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원 선서’도 못하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습니다. 5. 싸가지 발언엔..다수가 애써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이 자주 담겨있었습니다.
‘DJ신임만 받으면 개똥이건 소똥이건 할 수 있는데, 3선 4선이 무슨 훈장이냐.’
2002년 호남 중진의원을 비판한 발언입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으로 보자면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질러주니 오히려 시원한 구석도 있었습니다. 6. 그런데 조국 사건 이후 유시민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음모론으로 정치적 선동에 앞장섰습니다. 유시민은 본인 스스로 ‘어용지식인’이라 자처했습니다. (이전까지 스스로 ‘작가’라 불리길 원했었죠. )
‘어용’은 맞았지만 ‘지식인’은 아니었습니다. 7.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 바로 ‘노무현재단 계좌추적’입니다.
첫째. 너무나 분명히 말했습니다. ‘재단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2019년 12월) 구체적으로 시점과 사람이름까지 특정했습니다. ‘2019년 11월이나 12월 한동훈 검사장이 봤을 가능성 높다.’
둘째. 정치적 악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음모론의 온상역할을 했습니다. 8. 언행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치와 판단의 문제도 아닙니다. 분명한 참과 거짓의 문제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사안이었기에, 계좌추적 통보시한(1년)이 지나자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과는 잘 한 일입니다. 그러나 미흡합니다. 9. 유시민은 사과문에서 ‘의혹을 제기했는데..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고 밝혔습니다.
아닙니다. 유시민은 분명히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의혹’차원과 다른 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뭔가 있구나’며 믿었던 겁니다. 검찰이‘아니다’고 부인할 때마다 더 불신했습니다. 10. 그렇다면 그 근거를 얘기해야 합니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듣고 그렇게 확신했는지..밝혀야 합니다. 당신이 속인 것인지, 당신도 속은 것인지..
마침 24일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이 지난해 6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노무현재단 계좌추적관련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치판 편갈이에 따르면 심재철은 추미애의 심복이고, 유시민과 같은 편 아닌가요? 11. ‘사실이 아니었다’는 (유시민의) ‘판단’을 더이상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판단하니 너는 믿어라’는 오만한 태도로 넘어가려하면 안됩니다.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본인을 ‘우직한 편에 속하는 청년’이라고 했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늙어도 천성은 그대로이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칼럼니스트〉
202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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