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안 나온 괴담 많지만 아직 다 공개할 순 없어요"
[이영광 기자]
지난 7일과 9일에 걸쳐 2부작으로 방송된 MBC 파일럿 예능 <심야괴담회>가 화제성을 잡으며 정규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방송인 신동엽씨가 MC를 맡은 <심야괴담회>는 최근 예능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괴담'이라는 포맷으로 호평을 받았다. 시청자들이 투고한 괴담을 패널들이 읽어주는 방식으로 경쟁을 붙여 최고의 괴담꾼에게 상금 444만 4444원을 주는 것이다.
▲ <심야괴담회> 포스터 |
ⓒ MBC |
다음은 임 PD와 나눈 일문일답.
- 파일럿 방송인 <심야괴담회> 2부작이 지난 9일 끝났어요. < PD수첩 > 이후 첫 연출이었는데 소회가 어떠세요?
"기존의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제가 기획해서 론칭을 한 것이기 때문에 감개가 무량하고요. 약간 장르가 다르긴 했지만 어차피 방송의 기본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우리가 너무 바깥을 몰랐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 '막상 부딪혀 보니까 우리가 바깥을 몰랐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특히 그랬나요?
"기존의 시사교양에서 해왔던 프로그램들은 어느 정도 사회 정의에 복무하고 시청률이 큰 지표가 되기도 했지만 얼마나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능 작가님들과 작업하고, 외부 PD들과 협업하면서 바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 <심야괴담회> 시청률이 좀 낮았지만 화제는 많이 됐어요(3.7% 닐슨코리아 1월 9일 기준).
"제가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웃음). 일단 화제가 됐으니까 그나마 기운을 좀 찾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화제도 안 되고 시청률까지 낮아서 그냥 묻혀 버렸으면 다음에 뭔가 일을 시작할 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부터 TV에 무서운 것, 좋아하는 것이 나온다고 하면 신문 편성표에 체크해놓고 기다렸어요. 아마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찾아서 봤을 겁니다. <심야괴담회>를 만들 때, 내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서 볼 만큼 가치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어요. 댓글 반응을 보니 밤 10시에 알람을 맞추고 기다린다는 시청자분의 얘기가 있더라고요. 이런 시청자를 얻었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기다려서 시청해주신 시청자들을 모시게 된 것은 PD로서 정말 영광이고 잊지 못할 은혜입니다."
- <심야괴담회>는 이전에 기획했던 방송들과 결이 좀 다르잖아요. 어땠나요?
"채널이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센세이셔널리즘에 매몰되어 사소한 부분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부분은 최대한 조심하려고 합니다. 특히 저희는 공모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서 그런 부분을 차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상금이 걸리면 민감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모에 참가하신 분에게는 추가 상금을 드리고 1차 저작권을 보장하는 대신, 각색이라든가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부분은 제작진에게 일임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괴담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나온 망상인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 근거로 이야기가 된 것인지는 파악해야 했어요."
- 공모는 많이 들어왔나요?
"블라이스라고 KT 자회사인데 이게 웹 소설 플랫폼이에요. 블라이스와 협업을 해서 그쪽에서 공모를 받았고요. 홍보 기간이 짧았는데도 많은 공모작이 모였습니다. 다 읽어보고 추려내고 방송에 적합하도록 후가공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 <심야괴담회>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요?
"기획은 좀 오래된 것 같아요. 순수하게 제작 기간은 10주였어요. 기획안이 심사를 통과해 선정된 때가 2020년 봄이었고요. 제가 이명박 정부 말기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6년 동안 파업과 유배만을 반복했어요. TV 전파를 송출하는 주조정실에 3년 반을 갇혀 있었거든요. 갇혀 있으면서 철야 근무를 하는데 밤을 새기가 너무 힘들고 무료한 거예요. 그때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이라는 책을 번역했고요. 괴담을 좋아하니까 틈이 날 때마다 공포 썰, 괴담 게시판을 순례했습니다. 3년 반 동안 괴담만 읽으니 나름의 감식안도 생기고 무엇보다 중독되더라고요. 특히 레전드로 꼽히는 괴담들은 게시판에만 두기 너무 아깝고 돈 주고 사서 콘텐츠로 재가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괴담을 읽어주기만 하면 지루할 테니 서로 토너먼트식의 경쟁을 붙여보자는 아이디어로 기획안을 냈습니다."
- 처음 기획서 냈을 때 회사 반응은 어땠나요?
"되게 반응이 좋았어요. 신선한 시도 같다고 했어요. 바깥에서 MBC 교양을 바라보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 PD수첩 >에 집중되어 있고 취재물에만 특화된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방향을 취하려는 욕구가 안에서도 강했던 것 같아요.
- 엄밀히 따지면 <심야괴담회>는 예능 프로 아닌가요?
"겉보기에 예능 프로로 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문예 진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했어요. 사람들에게 글을 써 보라고 하거나 이야기를 지어 내보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을 하는데 귀신 봤던 얘기나 무서운 얘기해 보라고 하면 쉽게 꺼내잖아요. 이게 문예 부흥의 성격도 있다는 거죠."
-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예요?
"어느 정도냐면 이 방송을 마련하면서 보통 필요한 밑바탕이 되는 자료들 있잖아요. 저희 집에서 다 가져온 거고요. <요재지이>, <천예록>, <어우야담> 같은 고전부터 각종 괴기담집을 다 모으고 있고 <유령대백과>, <요정 100가지 이야기> 같은 희귀 도서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복간된 도감 류도 구입해 놨고요. 귀신도 믿지 않고 무서움도 덜 타는데 이야기 구조 자체가 재미있어요. 그리고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탐구하는 맛도 다르고요."
▲ <심야괴담회>의 한 장면 |
ⓒ MBC |
- 신동엽씨가 MC를 맡고 허안나, 박나래, 김숙 그리고 소설가인 곽재식 작가, 심용환 역사작가가 패널로 출연했어요.
"토크 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토크 쇼에 강점이 있는 MC들 위주로 섭외를 진행했고요. 신동엽씨 같은 경우는 기존에 19금 토크에 특화되어 있지만, 공포 토크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신동엽씨가 괴담을 무서워하거나 꺼릴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해서 '가모장' 콘셉트의 김숙씨를 섭외했고요. 신동엽씨는 기획안이 다 비슷비슷한데 신선함을 느꼈다며 흔쾌히 응해주셨고 김숙씨는 원래부터 이런 분야를 매우 좋아하셨대요. 박나래씨는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보도자료를 보고 아시고 저희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 주셨고요. 황제성씨는 <사이코러스>에서 맹활약했었기 때문에 작가님들이 추천해주셨어요. 게다가 MBC 공채 개그맨이잖아요. 저는 MBC PD로서 MBC 개그맨들에게 부채 의식이 좀 있거든요. 좋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못 만들어 드렸다는 점 때문에요. 허안나씨는 처음 기획안 쓸 때부터 염두에 둔 출연자입니다."
- 심용환 작가와 곽재식 작가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요?
"저는 공모 괴담만으로는 힘이 약하다고 판단했어요. 이 괴담을 분석하면서 유사한 이야기 구조 등을 문헌에서 찾아내서 부연해 줄 전문가가 필요했어요. 민속학자와 역사학자를 염두에 두었는데, 라디오국의 후배가 심용환 작가님을 추천하더라고요. 그 길로 만나 뵈었는데 이야기가 매우 흡인력이 있어서 출연 요청을 드렸습니다. 곽재식 작가님은 제 오랜 팬심으로 섭외를 한 케이스예요. 한국의 카프카라 할 법한 '관료제 호러'라는 그분만의 독특한 양식을 높이 평가해요.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을 존경하거든요. 우선 그분 자체가 기인이고, 괴물, 요괴, B급 호러에 화학과 과학 지식까지 망라하신 분이라 고전 문헌과 옛날얘기에 강한 심용환 작가님과 좋은 조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녹화할 때 분위기는 어땠어요?
"녹화할 때 분위기는 매우 좋았고요. 출연자들이 정말 고마운 게 녹화하시면서 기획이나 이 프로그램 콘셉트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고요. 또 '아무리 녹화를 오래 해도 지치지 않는다, 이상한 프로다. 하면 할수록 되게 재밌다'면서 위로되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미술감독님이 스튜디오에 처음으로 물과 안개를 깔아놓으셨는데, 스태프와 출연자들의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 괴담 선정은 어떻게 하셨어요?
"블라이스를 통해 공모받은 괴담을 작가님들이 하나하나 목록화해서 추려냈고요. 그다음에 제작진 1차 투표 후, 전화로 추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투표 결과와 취재 상황을 공유해서 2차 투표에 들어갔고요. 전문가 자문도 구하고 투표 상위권에 있는 괴담을 모아서 방송에 적합한 것을 추려내서 다시 각색 작업에 들어갔고요. 서로 괴담 취향이 달라 제작진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녹화를 진행하면서 영상으로 봤을 때 평가가 좋았던 괴담을 추려내서 방송한 거예요."
- 방송에 안 나온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많이 있죠. 많이 있는데 일단 제가 다 쥐고 있으려고요. 다 공개할 필요는 아직 없을 것 같아요. 제가 괴담 게시판을 보면서 느꼈던, 막강한 공포감을 준 이야기들은 아직 많이 안 나온 거 같아요. 진짜 잘 쓰고 정말 무섭게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많이 지원해 주셨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그래서 레전드 괴담을 썼던 분들에게 참여를 독려했는데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 정규프로그램이 된다면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일단 좀 제대로 된 독한 괴담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심야괴담회>가 잘 되면 잘 된 괴담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드라마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머리를 좀 식혀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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