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없다, 없다.. 여성 혼자 농촌 살 때 벌어지는 일들
[월간 옥이네]
'혼밥'이나 '혼술' 같은 단어가 일상화되고 <나 혼자 산다>나 <미운우리새끼> 등의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등 1인 가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00년 전체 가구유형 중 15.5%를 차지하던 1인 가구는 2019년 30.2%까지 증가했다. 이와 함께 체계적인 정책 설계를 위한 1인 가구 담당 부서 개설이나 관련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조례 제정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의 주류 매체가 다루는 1인 가구의 모습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농촌에서도 1인 가구는 증가하고 있다. 농촌에 사는 1인 가구는 도시의 1인 가구와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관련 정책 수립에 앞서 이들의 생애주기별, 성별뿐 아니라 지역적 특성에 따라 요구 사항이 다양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충북 옥천 지역의 1인 가구 실태와 이들의 정책 욕구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사나 통계 자료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월간 옥이네는 지난해 12월, 옥천에 거주하는 여성 1인 가구를 만나 단편적으로나마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어떤 어려움과 불편, 정책 욕구를 갖고 있을까.
▲ "저는 부모님이나 주변 도움으로 그럭저럭 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만약 이런 게 없었다면 옥천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선 1인 가구가 살만한 주거 공급 자체가 없으니까요." |
ⓒ 월간 옥이네 |
"지난해 초 옥천에 있는 학교로 발령받으면서 오게 됐어요. 2~3월엔 집을 구하느라 정말 고생한 기억만 나요. 전세는 아예 없고 월세마저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간신히 같은 학교 선생님 소개로 방을 구하긴 했는데 주변 치안이나 방범은 조금 불안해요. 층간소음이나 건물 내 흡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주거 환경이 이렇다 보니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A(29)씨는 옥천에 오게 된 첫날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던 기억이 난다. 집을 구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고, 현재 사는 집에 정착하기까지 옥천읍에서만 두 번의 이사를 더 해야 했다. "찾아가는 부동산마다 임대 나온 거 없다고 잘라 말하는데, 처음엔 정말 이상한 텃세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는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집을 구하긴 했지만 가격이나 시설 모두를 만족하는 괜찮은 집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저는 부모님이나 주변 도움으로 그럭저럭 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만약 이런 게 없었다면 옥천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선 1인 가구가 살만한 주거 공급 자체가 없으니까요. 1인 가구이다 보니 정착지원금 같은 지원사업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더라고요. 이런 상황이면, 무주택 세대주 기간이 길어져 청약에 유리하다는 것 말고는 옥천에 사는 장점이 없는 거예요(웃음)."
그는 옥천에서 겪는 '무료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퇴근 후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조용히 보낸다는 그는 간단한 취미생활을 할 만한 공간, 비슷한 젊은 층을 만날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렵지만, 그렇지 않을 땐 주말마다 본가와 친구들이 있는 청주로 나가게 되더라"며 "옥천에서 혼자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지역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처럼 직장 때문에 옥천에 왔다가 살아보니 좋아서 계속 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집을 구하는 것부터 사는 것까지, 이렇게 계속 힘들고 낯설면 오래 머무르기 어렵지 싶어요. 지역에서도 사람을 기르고 남겨야 할 텐데, 그런 차원에서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해결이 필요할 거 같아요."
#살_수_있는_집이_없다
▲ 방마다 존재하는 문턱, 경사로가 없는 현관, 높은 세면대와 욕조 등 휠체어 장애인이 혼자서 삶을 꾸리기엔 크고 작은 걸림돌이 너무 많다. |
ⓒ 월간 옥이네 |
옥천에서 태어나 자란 휠체어 장애인인 B(44)씨. 그가 가족에게서 독립한 건 15년 전. 대전이나 구미 등 옥천보다 큰 도시에서 살기도 했던 B씨는 무엇보다 '도시만큼이나 비싼 주택 임대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옥천읍 한 아파트에서 월세로 거주했던 그는 몇 개월 전 읍 외곽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나와야 했다. 아파트 계약 만료 이후 옥천읍 중심지에서 살 만한 거주지를 찾을 수 없던 탓이다. 이 집을 찾는 데만도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그이지만, 국민임대주택인 장야주공아파트 입주는 '그림의 떡'이다. 1인 가구의 경우 입주 조건부터 맞지 않는 것이다.
"옥천에 있는 국민임대주택은 1인 가구는 아예 대상이 되지 못하고, 기존에 살던 임대료(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 선에선 집이 아예 없더라고요. 보증금도 500만 원부터 시작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저렴해야 월세가 35만 원인데 이마저도 거의 없죠. 여기에 관리비나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니 주거비 부담이 만만치 않아요. 휠체어 장애인인 제가 교통이나 거주 시설이 더 불편해도 읍 외곽의 단독주택으로 올 수밖에 없던 이유예요."
월세와 난방비를 비롯한 각종 주거비에 50만 원 가량을 쓰고, 매월 병원 진료비와 약값으로만 최소 30만 원이 든다. 여기에 교통비와 식비 등 생활비를 포함하면, 기초생활수급비 등 정부 지원금과 현재 계약직으로 일하며 받는 임금을 더해도 빠듯할 수밖에 없는 한달살이다.
일반 주택이다 보니 집 안에서의 생활도 쉽지가 않다. 방마다 존재하는 문턱, 경사로가 없는 현관, 높은 세면대와 욕조 등 휠체어 장애인이 혼자서 삶을 꾸리기엔 크고 작은 걸림돌이 너무 많다. 비장애인에게 맞춘 구조이다 보니 양치질 한 번도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보건복지부 보조사업인 '농어촌 장애인 주택 개조사업'이 있긴 하지만 가구당 380만 원이 지원되는 정도라 이 역시 현재의 불편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는 형편.
"저 같은 중증장애인에게 주거는 정말 큰 문제예요. 옥천에 살면서 더 없이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고요. 공공임대주택을 비롯한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정책이 많이 필요해요. 저처럼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문제가 개선되면 좋겠어요."
#시골노인도_건강한_여가생활이_필요하다
▲ 난방도 문제지만 시골 노인들의 불균형한 식생활도 문제다. 대부분 혼자 지내다 보니 균형 잡힌 식사를 챙기기가 어렵다. |
ⓒ 월간 옥이네 |
면 지역으로 가면 '주거'는 조금 다른 방향의 문제가 된다. 낡았어도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당장 살 집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난방비나 불균형한 식생활, 고령화로 인한 외로움과 고립 등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동이면에 사는 C(77)씨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 월 4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한다. 매월 7만 원 정도 드는 약값을 제외하면 평소엔 특별히 돈 들 일이 많지 않지만 요즘 같은 겨울엔 난방비가 가장 큰 걱정이다.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않은 지역이라 등유로 보일러를 때다 보니 방은 늘 냉골이기 일쑤. 단독주택이라 늦가을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보일러를 계속 가동해야 해 난방비 부담이 제일 크다.
"기름 한 드럼에 16만~17만 원 정도 하는데, 겨울에 충분히 안 때도 대여섯 드럼은 써야 해요. 부담이 크지. 그래서 터지지 않을 만큼만 돌려요. 더 추우면 전기장판 깔고 사는 거고. 씻을 때도 더운 물 함부로 못 쓰죠, 샤워할 때나 잠깐 틀지."
안내면에 사는 D(85)씨의 집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평소 18도에 맞춰진 실내 온도가 1도라도 올라가는 날은 바깥에서 손님이 올 때뿐.
난방도 문제지만 시골 노인들의 불균형한 식생활도 문제다. 대부분 혼자 지내다 보니 균형 잡힌 식사를 챙기기가 어렵다.
"김치 하나 놓고 먹거나 장(된장찌개) 하나 놓고 먹는 거지, 혼자 있는데 뭘 더 차릴 게 있어요? 시골 노인들 다 비슷하지."
마을회관, 경로당에 모일 수 있을 땐 하루 한 끼라도 같이 차려 먹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19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끼니를 챙기는 것은 물론 함께 모여 소소하게나마 즐기던 여가 생활이 모두 막혀버린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홀몸노인들의 건강은 지역사회 문제 중 하나다. 불균형한 식사로 인한 고혈압이나 당뇨는 물론이고 관절염 등의 질환을 앓고 있는 옥천의 홀몸노인은 옥천 전체 홀몸노인의 85% 가량.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홀몸노인도 5명에 1명꼴이다. 이번에 만난 D씨 역시 혈압과 관절염을 비롯해 우울증으로 10년 가까이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D씨는 "몸이 성한 데도 없고 혼자 있으니 사는 게 괴롭고 서럽다"며 "어떨 때는 해가 떠도 슬프고 해가 져도 슬프다"고 말했다.
D씨와 한 마을에 사는 E(79)씨 역시 외로움에 대해 말한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E씨는 "전에야 경로당에 모여서 사람도 만나고 했는데 요즘에는 함부로 나서기도 어렵다"며 "재미있으나 마나 텔레비전은 그냥 틀어놓는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갈 데도 없지 않냐"고 말했다.
[관련기사]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한 주거대안, 공동생활홈 http://omn.kr/1rt0b
농촌도... 10가구 중 3가구 '나 혼자 산다' http://omn.kr/1rsya
월간 옥이네 2021년 1월호(통권 43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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