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골프숍]골프의 그루브 전쟁과 클리블랜드 RTX 집코어
그루브(groove)는 표면의 홈, 혹은 음악의 리듬을 뜻한다. 골프 클럽의 그루브는 자동차 타이어 표면의 홈 역할을 한다. 볼과 클럽 페이스 사이의 물이나 먼지·잔디 등의 이물질을 흡수한다. 그루브가 없다면 스핀이 제대로 걸리지 않고 볼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골프 규칙엔 그루브 규정이 있다. 폭(약 0.9mm 이내), 깊이(약 0.5mm 이내), 간격(그루브 폭의 3배 이상)이었다. 2010년 용적 규정도 생겼다.
이 그루브 때문에 말썽이 많았다. 1948년 US오픈에서는 학교에서 학생 가방을 뒤지듯, 그루브를 검사하다 선수들과 조직위가 갈등을 겪었다. 1967년 라이더컵에서는 미국과 유럽팀이 서로 상대가 그루브를 규정보다 깊이 팠다고 비난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다 골프에서 가장 큰 전쟁이 터졌다. 1980년대 후반 골프계의 토머스 에디슨이라 불렸던 핑의 창업자 카스텐 솔하임은 V형태로 파진 그루브보다 U자형이 유리하다는 걸 알아냈다. U자형 그루브는 용적이 더 크기 때문에 스핀을 걸기에 유리하다. 솔하임은 U자형의 맨 윗부분이 직각이면 너무 날카로워 공의 표면이 쉽게 상해 곡선처리를 했다.
장비 승인권을 가진 미국골프협회(USGA)가 용납하지 않았다. USGA는 “곡선처리로 그루브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그루브 간격 규정을 위반했다”며 불법 클럽으로 규정했다. 핑은 “그루브의 U자 수직 라인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소송을 벌였다. 4년간 감정싸움을 벌이던 양측은 판결이 나오기 직전 “89년 이전 제품은 합법이고, 89년 이후 제품은 룰에 위반되는 제품”으로 간신히 합의했다.
USGA와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핑은 PGA 투어와 2차 대전을 치러야 했다. PGA 투어는 “U자 그루브를 쓰는 선수가 유리해 공정하지 않다”며 금지하려 했다. 당시 PGA 투어는 골프 용품 사업을 하려고 했다.
PGA 투어가 용품도 만들면서 규제 권한도 가진다면 일반 용품사는 설 자리가 없다. 핑은 더 맹렬하게 싸웠고 결국 소송에서 이겼다. 그러나 솔하임은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기력이 쇠했다. 스트레스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2000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용품사들은 그루브에 관해 매우 조심스럽다. 다시 그루브 전쟁에 휘말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루브 규정 한계까지 가지 않고 그루브 간격을 규정보다 넓게 배치하고 홈을 얕게 파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 핑 아이2의 그루브는 19개였는데 이후 나온 웨지는 대부분 그루브가 17개다. 일종의 비무장지대를 둔 것이다.
클리블랜드는 웨지의 명가다. 1988년 만든 588 웨지는 골프 사상 가장 많이 팔린 웨지다. 다양한 바운스 각을 처음 만들었고, 헤드 페이스에 마감처리를 하지 않아 쉽게 녹이 슬게 한 그레이 시리즈, 검정색 헤드 웨지 등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했다.
21세기 들어선 주인이 자꾸 바뀌면서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 그러다 절치부심해 내놓은 제품이 ‘RTX ZIPCORE’다. 클리브랜드 골프에 따르면 출시 직후부터 좋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성공의 가장 큰 비밀은 그루브다. 핑 아이2처럼 19개다. 그루브가 많아 스핀이 잘 걸린다고 마케팅한다. 그루브가 19개여서 19금 퍼터라는 별명도 붙였다.
그루브 수를 늘렸다는 건 기존 웨지보다 그루브 규정 한계에 다가갔다는 말이다. 클리블랜드는 “그루브 사이의 폭을 약간 좁혔고, 홈을 7.3% 깊이 팠다”고 했다. 그루브 깊이 규정은 약 0.5mm 이내다. 7.3% 깊어졌다고 해도 최대 0.0375mm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머리카락 굵기(0.1mm)의 3분의 1 정도다.
골프 클럽 제작 기술이 그 정도로 정교하게 발전했으며, 그 차이가 시장 판도를 바꿀 정도로 골프 클럽 경쟁은 치열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클리블랜드 웨지의 이름 집코어는 우편번호(zipcode)가 연상된다. 집코어의 주소는 그루브의 비무장지대가 아닐까. 재기를 노리는 클리블랜드 웨지는 비무장지대의 군인처럼 전진 배치되어 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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