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죠" 그 말에 푸틴도 무장해제..인터뷰 전설 래리킹
클린턴, 푸틴 등 전세계 애도
마돈나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달라이 라마까지-.
23일(현지시간) 88세(1933년생)의 나이로 작고한 래리 킹이 인터뷰한 이들 중 극히 일부다. 킹이 전 세계 정·재계 및 연예계의 셀럽과 진행한 인터뷰는 5만 회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가 1985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했던 ‘래리 킹 라이브’엔 로널드 레이건부터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현직 대통령 전원이 출연했다. ‘킹’이라는 이름 그대로 토크쇼의 제왕이었던 그가 지구촌을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자 전 세계에서 애도 메시지가 쇄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래리와 20회 이상 인터뷰를 하며 항상 그의 유머 감각과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 덕에 즐거웠다”고 트윗했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킹은 진정한 프로였다”고 애도했다. “당신과의 인터뷰는 항상 선물과 같았다”(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페이스북), “방송계 거인이자 달인인 래리 킹의 쇼엔 누구나 출연하고 싶어했다”(크리스티안 아만푸어 CNN 앵커) 등이 줄을 이었다.
킹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9세 때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여의고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책임졌다. 대학 진학은 포기하는 대신 라디오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러다 우연히 1975년 CBS의 플로리다 지국에서 일자리를 제의받았고, 3년 뒤 능력을 인정받아 쇼 진행 마이크를 잡는다. 당시 그의 상급자가 킹의 본명인 ‘자이거(Zeiger)’를 놓고 “특정 국가 출신을 떠올리게 한다”며 예명을 지어줬다. 그는 자서전에서 “책상 위 신문에 있던 ‘킹 주류회사’ 광고를 보고 ‘이거 좋네’라며 이름을 바꿔줬다”고 회고했다.
그의 쇼는 곧 플로리다를 넘어 미국 전역에 방송되기 시작했고, 1980년 개국한 CNN의 테드 터너 사장이 직접 그를 스카우트했다. 이후 멜빵바지 차림의 그의 토크쇼는 CNN의 간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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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결은 '나'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
그의 인터뷰 비결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인터뷰이의 말을 경청할 것”과 “준비를 너무 많이 하지 말 것” “질문은 간단히 하되, 답변을 보고 바로 후속 질문을 할 것”이다. 그가 생전에 직접 밝힌 내용이다. 중앙일보 고(故) 김영희 대기자와의 2011년 인터뷰에서 “인터뷰의 비결은 ‘나(I)’라는 말을 쓰지 않고, 준비를 미리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것”이라며 “대학에도 못 간 나는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고 김 대기자는 “그의 모습에서 권위주의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킹이 특히 중시한 것은 경청이다. 그는 가디언과의 2014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인터뷰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내가 그들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해서 훈계하지 않아요. 첫 질문은 거의 같습니다. ‘왜 그랬죠?’ 그리곤 일단 그들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인터뷰이에 대한 세간의 판단을 수용하는 대신 기초적 질문부터 던지며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고, 이런 태도가 인터뷰이의 마음을 무장해제했다. 그는 가디언에 “악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라도 거울을 보며 ‘그래 내가 악한 사람이지’라고 하지는 않는다”며 “나는 우선 그의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경청 뒤엔 후속 질문을 쏟아냈다.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되 부드러운 유머를 첨가했다. 마돈나와의 1999년 인터뷰에서 마돈나가 “내 딸이 만약 유부남과 사귄다면 그애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다”고 과장해서 말하자 킹은 그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는 마돈나 당신은 유부남과 엮인 적이 없나요”라고 물었다. 수많은 염문설의 주인공이었던 마돈나를 향해 모두가 궁금해하던 핵심 질문이었다. 마돈나는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인터뷰의 제왕 역시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사망하기 2년 전인 2009년 인터뷰가 그랬다. 카다피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하며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로 미국의 제재를 받다 2003년 핵포기를 선언했지만, 나중에 반군에 의해 살해당한 리비아의 지도자였다. 그런 그를 만난 킹은 통역의 도움을 받아 “너무 오래 집권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부터 “당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뭡니까”라고 물었지만 카다피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글쎄” 등 단답만 내놓았다. 킹은 이후 이를 최악의 인터뷰라고 회상하며 “(마)약을 한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가장 인터뷰하고 싶어했던 한반도의 인물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그는 2011년 6월 고 김 대기자에게 “발전한 남한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첫 질문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그해 12월 열차에서 사망했다.
킹은 7명의 부인과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며 5명의 자녀를 뒀다. 지난해 여름 65세였던 아들 앤디가 심장마비로, 51세 딸은 폐암으로 숨졌다. 이들의 급작스런 죽음 뒤 킹은 지난 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숨을 거뒀다. 이제 그는 떠났지만 고인이 남긴 인터뷰는 세상의 기록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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