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공이 담장 넘을수록 흑인 장벽 무너졌다" 행크 애런 별세

입력 2021. 1. 24. 17:52 수정 2021. 1. 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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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행크 애런이 1999년 4월 자신의 이름을 딴 '행크 애런 어워드'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헨리 루이스 애런은 1934년 2월 5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바일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흑인 가정의 장남에게 야구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어릴 때부터 농장에서 목화를 따면서 생계에 힘을 보탰다. 야구가 하고 싶을 때면 병뚜껑을 야구공, 나무 막대기를 배트 삼아 연습을 했다. 거리에서 주운 온갖 물건을 야구 장비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15세의 어느 날도 그랬다. 애런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지역 세미프로 야구팀 구단주인 에드 스콧이 우연히 그 곁을 지나쳤다. 처음 보는 흑인 소년의 타격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곧바로 자신의 팀 입단을 권유했다. 야구팀이 있는 학교로 전학도 시켰다. 재능은 넘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던 천재 소년이 마침내 야구의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딘 순간이다. 흑인들만 뛰는 니그로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그리고 다시 메이저리그(MLB)로. 애런이 담장 밖으로 넘기는 타구가 늘어날수록, 흑인 선수들의 앞에 놓였던 장벽들도 하나씩 무너졌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MLB에서 승승장구하던 애런은 통산 713호 홈런을 치고 1973년을 마감했다. 백인들의 영웅인 베이브 루스의 MLB 역대 최다 홈런(714개) 기록에 단 한 개 차로 접근했다는 의미였다. 겨우내 애런을 향해 93만여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하루 평균 3000여통꼴이었다. 팬레터도, 응원도 아니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협박 편지였다. "흑인 녀석 보아라. 이 검은 짐승아, 만약 네가 홈런을 더 쳐서 위대한 베이스 부스의 기록을 넘어선다면, 널 죽여 버리겠다"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애런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협박했다. MLB닷컴은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더그아웃에서 애런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총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그의 옆에 앉길 꺼렸다"고 썼다. 실제로 애런은 1974시즌을 앞두고 "내가 계속 경기에 나가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과 가족, 동료들의 안전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여느 때와 똑같이, 배트를 들고 당당히 타석에 섰다. 그해 4월 9일(한국시각), LA 다저스와 홈 개막전에서 마침내 개인 통산 715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어머니와 포옹한 애런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그 후로 47년 가까이 흐른 2021년 4월 23일, 애런이 선수 생활 전부를 보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그가 애틀랜타 자택에서 8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고 발표했다.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행크 애런을 추모하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 캡처]


애런은 최고의 타자였다. 1954년부터 76년까지 MLB 통산 329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0, 홈런 755개, 2297타점, 도루 240개를 기록했다. 역대 최초로 3000안타(3771개) 고지를 밟았고, MLB 통산 타점 1위에 올라 있다. 홈런은 역대 2위에 해당하지만, 야구팬 대부분이 애런을 '진짜 홈런왕'으로 여긴다. 1위에 올라 있는 배리 본즈(762개)는 금지 약물 복용 전력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가난과 인종차별을 모두 극복한 애런은 마지막 순간까지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애런은 수많은 사랑을 받은 스타이기도 했다. 23시즌 동안 24차례 올스타로 선정됐다. 시즌 수보다 올스타전 수가 많은 건, MLB가 1959~62년 한 해 두 차례씩 올스타전을 열었던 까닭이다. 그는 4년간 열린 8번의 올스타전에 모두 출전했다. 은퇴 후인 1982년에는 97.8%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당시 애런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건 타이 콥(98.2%) 밖에 없었다.

추모의 물결은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애도를 표현했다. "애런은 그저 홈런 수를 늘리기 위해 베이스를 돈 게 아니다. 그는 편견의 벽을 깨는 게 국가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었다"고 썼다.

야구계도 슬픔에 빠졌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애런은 모든 부문 최상위권에 오른 대단한 선수다. 기록상으로도 대단하지만, 인격과 진실성은 더 대단했다. 야구에 상징적인 존재였던 그를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했다. 그는 앞으로도 야구 역사에서 늘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 브랜던 로(탬파베이 레이스) 등 스타 선수들 역시 SNS에 글을 올려 애런을 추모했다. 특히 트라우트는 "애런을 보면서 늘 '경기장 안팎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오늘 전설을 잃었다"고 슬퍼했다.

일본 프로야구 최다 홈런(868개) 기록 보유자인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도 애런의 사망 소식에 성명을 발표했다. "애런은 홈런과 타점에서 당시 세계 기록을 세운 최고의 선수였다. 대단한 신사로서 MLB 선수들의 거울이 되기도 했다. 훌륭한 삶을 살다 간 그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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