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이익에 눈치보이는 금융지주, 이익공유제 동참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양극화 해소를 위해 여당이 추진하는 ‘이익공유제’에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사상 최대 이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치권이 코로나19 수혜업종으로 금융업을 지목하며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등에 따른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 정치권이 사기업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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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에 “많이 벌었으니 내놓으라”는 여당
여당이 만지작거리는 ‘금융권 이익공유제’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의 발언으로 급물살을 탔다. 홍 의장은 지난 19일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익을 보는 가장 큰 업종은 꼬박꼬박 이자를 받아 가는 금융업으로 은행권의 이자도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당초 코로나19의 여파로 수요가 폭등한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 등 플랫폼 기업을 이익공유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금융 지주사가 정치권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은 역대 최대 실적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여당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서민금융법)을 개정하고, 현재 3550억원인 서민금융 재원을 5000억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당내에서 협의 중이다. 현재 서민금융 기금은 복권기금 등 정부출연금(약 1750억원)과 저축은행·상호금융 출연금(약 1800억원)을 합해 약 3550억 규모다.
여당은 정부와 금융권 출자액을 모두 늘려 총액을 5000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공적자금이나 쌓여있는 여유 기금을 활용해 일부 출연하되,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로 상당 부분을 충당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당의 안(案)대로면 은행 등 1금융권에서 1100억원을 추가로 내놔야 한다.
지난해 대형 금융 지주사가 좋은 실적을 낸 것은 사실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금융지주사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2019년보다 7% 많은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생활고로 인한 대출 수요와 ‘빚투’ 대출 수요가 모두 늘어난 영향이다. 동학 개미 열풍에 힘입어 금융지주사의 자회사인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익도 크게 늘었다.
정치권에서 “코로나19로 이익을 봤으니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저소득층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 지원에 정부가 약 80%를 보증하면서 위험도 줄여주면서 이익을 낼 수 있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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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의무 있지만 시장 원칙은 지켜야”
단순히 실적만을 놓고 보면 1100억원이 부담스러운 액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렵다. 은행이 대표적인 면허 업종이자 규제 업종인 탓에 진입장벽이 높아 예대마진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편하게 장사를 해왔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은행도 할 말은 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행위가 심해지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지난해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원리금과 이자 상환 유예 등 정부 조치에 동참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은행권의 이자 유예 규모는 950억원 수준으로, 이자 유예 혜택을 받는 차주들의 대출 원금은 3조 8000억으로 추정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차주가 일으킨 대출이 4조 규모인데, 이는 사실상 부실 대출로 분류해야 한다”며 “부실에 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차치하더라도, 은행 돈은 결국 주주와 예금주의 돈인데 이 돈을 여당에서 마구잡이로 가져다 쓰는 것이 맞냐”고 말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은행은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공적 기능을 수행할 의무가 있지만, 정치권이 주식회사의 운영 원리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은행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이자 면제나 원리금 상환 연장, 예대 마진 축소 등을 그때그때 정치 논리에 맞춰 요구한다면 결국 은행 건전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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