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엔 "인도·태평양" 日엔 "위안부 합의 인정"..文외교 급선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전략이 급선회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ㆍ미ㆍ일 동맹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통해 사실상 공식화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직접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질서가 급격한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인도·호주 등이 참여하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중국 봉쇄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 대통령 임기 초반인 2017년 11월엔 김현철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우리는 거기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외교적 파장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의 기류는 많이 달라졌다.
이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변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과의 첫 정상통화에서 “한국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핵심축(linchpin)”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전략을 수용하라는 압박이자, 미ㆍ 중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통첩이란 해석이 나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3일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인도ㆍ태평양 지역 내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이라는 말을 꺼냈다.
문 대통령의 외교전략 변화는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든 남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절박함 때문이란 게 여권 인사들의 분석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동북아정책에서 중국 문제가 제일 크고, 중국 문제의 부속 문제로 북한을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단기간 내에 한반도 정책의 성과를 내려면 일단 미국의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 때문에 한ㆍ일 관계 개선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 봉쇄 전략의 기본 조건으로 한ㆍ미ㆍ일 동맹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판결은 2015년도 합의가 양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2018년 2월 아베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정부 간의 주고받기식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을 사실상 번복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국내 사법부의 강제징용ㆍ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판결에 대해서도 “강제집행의 방식으로 (일본 기업의 재산이) 현금화 된다든지 판결이 실현되는 방식은 양국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정부가 1억원을 보상하라고 결정한 판결에 대해서는 “곤혹스럽다”고 했다. 이전까지 문 대통령은 “삼권분립과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의 관한 문제”라며 일본측의 반발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문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정부의 공식 대응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정부는 23일 입장문에서 재차 “위안부 합의가 공십 합의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 차원의 어떠한 추가적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외교적 논란이 불가피한 법적 배상 대신 “스스로 책임통감과 사죄ㆍ반성의 정신에 입각해 피해자들의 명예ㆍ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을 요청했다.
정부의 입장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해당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밝힌데 따른 공식 답변이었다. 또 강창일 주일대사가 일본 부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왕을 ‘천황 폐하’라고 지칭한 것도 다분히 일본측 여론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다.
외교가에서는 지난해 코로나로 연기된 한ㆍ중ㆍ일 정상회담이 상반기 중 열릴 경우 한ㆍ일 관계 복원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제기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국은 물론 일본 역시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한ㆍ일 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관계 복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며 “지금까지 갈등 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왔던 한ㆍ일 정부의 이해관계가 변화한 시점에서 과거의 앙금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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