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트럭커 김지나, 화물연대 최초 여성지부장 되다
[정종배 기자]
▲ 김지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부산 서부지부장. 부산항만 인근 화물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에 오르고 있다. |
ⓒ 정종배 |
단독출마이긴 하지만 당선에 대한 확신은 크지 않았다. 강한 남성 중심 문화 탓도 있지만 노동조합 일이 쉬운 게 아니다. 지지하는 조합원들을 믿고 출마를 결심한 거다. 내 당선이 화물연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
-화물운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생계 때문이었다. 남편이 조선소 용접공인데 조선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가계도 어렵게 됐다. 보통 기술도 경력도 없는 여성이 쉽게 찾는 자리가 식당일 같은 단순 노동인데 내 성격엔 맞지 않았다. 기술이라곤 딱 하나 운전이 있었는데 길에서 큰 화물차를 보면 한번 몰아보고 싶단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남편은 물론 주위에서 여성에겐 힘들고 위험하다면서 반대만 하니깐 오기가 발동했다. 당시 학원에서 배워도 남성 절반 이상이 면허시험에서 떨어지는 편인데 난 한 방에 합격했다. 남성 응시자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봤다.
쉽지 않은 구직, 은인을 만나다
-일을 시작하며 고충은 없었나?
면허는 땄는데 초보에 여성이라고 아무도 날 고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파격적으로 자리를 마련해준 분이 컨테이너위수탁지부의 이승덕 당시 지회장이다. 주차장 공터에서 3일 동안 연습시킨 후 양산에서 부산신항까지 33km 정도의 거리를 빈 컨테이너 두 개를 실어 나 혼자 보냈다. 나는 담담하게 첫 운행을 마쳤는데 그분은 손에 땀을 쥐고 덜덜 떨었다고 한다.
▲ 김지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부산 서부지부장. 김 지부장은 운송 외 업무로 산재사망하는 화물노동자가 많은 것을 지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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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화물노동자들은 운전 외의 일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간 다친 일은 없었나?
화물노동자는 운전이 업무인데 컨테이너 검사, 상하차 업무까지 하고 있다. 차에서 내리다가 넘어지는 일도 있고 컨테이너 문을 여닫는 중에 쉽게 다친다. 운송 외 업무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그 점에 있어 화물연대가 할 일이 많다고 본다.
사회 초년생을 싸움닭으로 만든 노동 환경
-화물연대 가입 동기와 활동은?
운전하기 전에는 사회생활 경험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노조나 노동운동은 모르기도 했지만 관심조차 없었다. 운전하면서 접한 세상은 불합리하고 답답한 일 투성이었다. 항만터미널에만 들어가면 싸움닭이 됐다.
당시 주차할 곳이 따로 없어서 월 20만 원이 넘는 사설 주차장을 이용했는데 화물연대가 관리하는 곳은 5만 원이면 됐다. 20만 원이 적은 돈이 아니기도 했고 화물연대 조합원이 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우연히 노조 총무 일을 맡게 되면서 화물연대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게 됐다. 화물연대 19년 역사와 그간 구축한 힘은 대단하다고 본다. 정부나 운송사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조직임을 알게 됐다. 노동자들이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해결사 같은 존재다.
-화물 운송 일이나 노조 활동에 대한 가족들의 걱정이나 반대는 없었나?
사실 남편은 가부장적인 사람이라서 일을 시작할 때부터 반대했다. 화물연대 활동을 두고도 그간 많이 싸웠다. 집에서 업무 본다고 컴퓨터를 켜면 남편이 잔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대화를 많이 하면서 설득했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집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측은하게 보더니 지금은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선거 기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화물노동자 대부분이 남성이고 연령대도 높은 편이다. 당연 보수적이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컸다. 그런 탓인지 자꾸 나를 박근혜랑 비교를 하더라. 하필 적폐로 불리는 사람과 비교하니깐 불쾌한 일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운동에 집중했고 결국 85% 찬성으로 당선됐다.
위험한 무료노동이 초래한 산재사망 막아야만
-지부 입장에서 지역본부나 중앙에 바라는 점은?
고질적인 운송 외 업무 강요 문제는 쉽지 않다. 상하차 업무는 운송 고유 업무가 아니다. 그렇다고 화주나 운송사가 안전 장구를 지급하거나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 고위험의 무료노동은 산재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태안화력이나 영흥화력, 광주 기아차에서 발생한 상하차 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 김 지부장이 착용한다는 마스크에 ‘안전운임제 사수, 법을 지켜라’라는 구호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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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안전운임제 시행 2년 차인데 문제나 개선점이 있다면?
현장에선 제도를 비현실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법을 어기는 운송사에 건당 500만 원, 불법리베이트는 2000만 원 벌금을 때린다지만 신고자 정보가 그대로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 신고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신고해도 처벌받았다는 운송사 이야길 들은 적이 없다. 이렇다 보니 운송사들이 편법을 쓰면서 수수료를 갈취하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물량마저 줄어든 상황이라 화물노동자는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사실 문제는 운송시장의 갑인 화주다. 택시나 버스요금이 내리는 걸 봤나?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임금도 오르지만 운송운임은 역으로 수십 년간 깎이고 있었다. 화주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화주와 운송사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화물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민주노조는 날개다. 개인이 아닌 노조 직책을 달고 터미널이나 운송사에 항의하면 의식을 많이 하더라. 같은 말을 해도 실리는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조, 조직된 힘을 믿고 더 열심히 활동한 이유다. 사회 초년생이었는데 날개 하나는 잘 달았다.
▲ 김 지부장이 운전을 시작하며 구매한 중고화물차(06년식)에 앉은 모습니다. 그는 고장은 있었지만 큰 사고 없이 자신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차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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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종배 시민기자는 화물연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노동과세계'에 중복 송고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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