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적나라한 리얼돌 다큐.."작가상 후보 박탈" 요구도
일부 관람객 작품 철회 주장도
일본에서 '러브돌 아저씨'로 유명한 나카지마 센지(63). 그의 좁디좁은 집엔 사람 크기만한 인형이 다섯 개나 된다. 아내와 두 자녀까지 있는 가장이지만 실제 가족과 헤어져 사는 그는 리얼돌을 목욕시키고 함께 TV를 보고 자는 등 일상을 함께한다. 처음엔 성적 욕구를 해소할 목적으로 인형을 사들였다고 말하는 그는 "인형은 나를 배신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 '2020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오른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정윤석의 다큐멘터리 영화 '내일'의 한 부분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이 작품은 리얼돌(섹스돌)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현재 '여혐(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은 해마다 가장 주목하는 작가들을 선정해 소개하는 프로젝트. 지난해 12월 4일 개막한 전시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한 미술관 휴관으로 한달 여 넘게 중단됐다가 지난 19일부터 다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2020 올해의 작가상' 후보 작가는 김민애(39), 이슬기(48), 정윤석(39), 정희승(46) 등 모두 네 명.정 작가는 영화 한 편과 사진 및 영상 설치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중 '내일'은 중국의 한 섹스돌 공장의 노동 현장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일본에서 인형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 센지,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을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인물 마츠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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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관람객 "굳이 이걸 소재로?" 비난
문제는 이 작품이 여성의 신체를 성적 도구화한 리얼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공장에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공정 자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으로 그득하다. 이를테면 엉덩이, 생식기, 목, 다리, 얼굴 등 여성의 신체 부분들이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 거칠게 다뤄지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 더 충격을 주는 것은 일부 장면을 정지시켜 포착한 사진 작품들이다. 제작 공정 중 일부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만 각 이미지는 마치 인간의 신체를 절단해 놓고 폭력을 가한 것과 같은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이것은 여성의 존엄을 훼손한 예술인가, 아니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작가의 경고인가.
전시 관람객 중 일부는 SNS와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 등에 글을 올려 “작가가 섹스돌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이 작가를 공공기관이 '올해의작가상' 후보로 삼은 것 자체가 거대한 여성혐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데이트 폭력이 사회문제인 한국에서 물체가 된 여성 신체를 두고 남성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혐오"라며 "전시를 당장 내려야 한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작품 내용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선 '#올해의작가상_정윤석_후보박탈하라'는 해시태그가 번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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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간다움이 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작가는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들이 선택하는 삶의 모습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구체적으론 인간의 모순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본지가 보낸 서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작가는 "관점에 따라 이 영화의 소재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불편함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분명한 것은 이번 신작에서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곧 도래할 미래이자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라며 "'내일'이라는 제목 역시 그런 관점에서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또 "영화의 전반부에서 인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후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이 가진 모순과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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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가능, 작품 철회 요구는 지나쳐"
이에 대해 미술계는 "보는 시각에 따라 작가가 리얼돌을 소재로 삼고 이를 예술적 재현한 방법에 대해 불쾌하게 여길 수 있지만, '여혐'으로 단정을 내리고 작품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한 전문 큐레이터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재현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이 불쾌하게 여기거나 치부라고 여기는 것들을 다룰 수 있는 게 예술"이라고 말했다. 또 최열 미술평론가는 "작품이 직접 혹은 직설적으로 윤리적인 기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 한 그것을 특정한 관점으로 재단하는 것은 적절하고 합당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 생각만이 예술과 사회에 대한 절대적으로 옳다는 식의 주장은 자칫 폭력적일 수 있다"면서 "오히려 이번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토론하고 예술적인 성찰을 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정 작가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사건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을 해왔다. 2014년 지존파의 검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다룬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를 발표했고, 2016년 국가보안법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밤섬해적단 서울 불바다'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전시는 내년 4월 4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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