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수 캐스터의 헤드셋] '820327-*******' 불혹 프로야구의 다짐

데스크 2021. 1. 23. 16: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MBC 청룡-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삼성 라이온즈 4번타자 이만수가 첫 홈런을 날리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820327-*******. 저의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지난 1982년에 제가 태어났으니까 올해로 40살이 되었습니다. 제가 벌써 마흔 살이 되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10살, 20살, 30살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제가 세상 빛을 보게 되었을 때 출범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을”이라는 원대한 뜻을 품고 태어났죠.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어느새 마흔.


제가 마흔이 될지는 정말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흔히 15세를 일컬어 지학(志學)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20세는 갓을 쓰는 나이를 칭하는 약관(弱冠),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즉 불혹(不惑)이라 부른다지요. 제가 바로 불혹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참으로 부끄럽지만 여전히 의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저의 과거를 돌아보면 여전히 철들지 않은 시기였고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의 마음가짐도 그렇고,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자꾸 마음이 급해집니다. 특별히 뭔가를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 참 세월타령을 하다 보니 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군요.


제가 누구인지 눈치 채셨죠?? 저는 “한국 프로야구” 라고 합니다.


제가 태어났던 82년 당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흔히 3S 정책(SPORTS·SEX·SCREEN) 일환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 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한 우민정책의 하나로 저는 출생했죠.


참!! 오해는 마세요. 그 이유뿐만이 아니라 당시 고교야구의 인기는 정말이지 동대문구장 주위가 터져나갈 정도였으니 제가 태어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답니다. 아무튼 국내 처음으로 프로야구 선수라는 직업이 생겨났고, 이후 83년에는 프로축구와 프로씨름, 농구대잔치가 출범하는데 일조를 했답니다.


한 가지 더!! 82년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는 사실. 그로 인해 밤 문화가 엄청 활기를 띠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이유나 과정을 떠나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MBC 청룡-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이 열렸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씨가 시구를 했습니다. 그 경기를 시작으로 제가 세상 빛을 보게 되었죠.


82년 당시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1215만원이었죠. 2020년 1군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외국인과 신인선수를 제외) 2억 3729만원. 이랍니다. 연봉이 그리 높아진 이면에는 관중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구단수입에 상당한 기여를 해주셨죠. 예나 지금이나 팬들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평균 관중 숫자로 보자면 원년에는 관중 144만 명, 19년은 728만 명(2016-18 시즌까지는 3년 연속 800만 돌파)을 기록했으며, 6개팀에서 출발한 저는 몸집을 불려 현재 10개 팀으로 늘어났지요. 팬도 늘어나고 많은 관심을 받으니 프로야구 전 경기 중계방송과 경기 후 하이라이트까지. 그뿐이겠습니까? 몸집이 커졌으니 그에 맞는 질적 성장도 있었답니다.


우리 야구 역사에 가장 커다란 획을 그은 9전 전승의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해 98년 방콕 아시아 게임, 2002년 부산, 2010년 중국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 게임 금메달.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우승, 19년 준우승 이외에도 수많은 국제대회에서의 입상까지. 한국 야구의 르네상스 시대라 불릴 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화려했던 일도 있었지만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참담한 사건, 사고들도 많았습니다. 일일이 언급하기도, 입에 담기도 부끄럽지만 그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저의 지난 과거이기도 합니다. 두 번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될 일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잠실야구장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다들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지난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몹쓸 전염병은 우리의 발을 묶어 버렸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야외활동을 할 수 없는 일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인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눈 맞추며 이야기 나누는 평범했던 일상이 이제는 우리의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정되었던 프로야구 또한 계획대로 시작할 수 없었으며 관중이 함께하지 못하는 비정상의 모습으로 뒤늦게 시즌을 출발했죠.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았던 시즌이 모두의 노력으로 정규시즌과 포스트 시즌을 모두 치르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프로 스포츠의 정상적인 리그운영으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의 세계적인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에 우리 야구를 보여주었고, 미국인들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야구를 접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지요. 이렇듯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야구는 또 한걸음 내디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나친 '국뽕' 아니냐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우리는 야구 변방이 아닌 중심국가로 이미 자리매김 했음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마흔 살을 맞는 이제부터가 정말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일단 지난해 대부분의 경기에서 관중이 함께 할 수 없었던 시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구단의 재정적자가 엄청나게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온라인 게임 산업의 발달과 함께 잠재적인 팬들의 유입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거기에 결코 짧지 않은 경기시간을 어떤 방법으로 단축시키느냐 또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경기의 질을 꾸준히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며, 끊임없이 스타를 발굴해야 하는 것 또한 저의 의무입니다. 정말이지 곳곳에 넘어야 할 암초가 수 없이 많기에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합니다. “위기가 곧 기회다” 라는 말이 있듯이 산적한 모든 문제는 기필코 풀어야 하며, 하나하나 반드시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들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야구업계 종사자와 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구단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모두가 공존 할 것인가? 구단의 자생력을 갖추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팬을 유입시킬 것인가? 관중들에게 안락함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 시장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이외에도 수 없이 많은 난제들이 존재하기에... 이 문제는 해결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 생존의 문제입니다.


저부터 조금의 사심 없이 마음의 문과 귀를 열겠습니다. 여러분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2020년 한 시즌을 통해 통렬히 깨달았습니다. 곧 있을 2021시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철저히 대비하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맷집을 키우겠습니다. 더 이상의 핑계도,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기에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어떠한 일에도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의 나이 마흔이기 때문입니다.


글/임용수 캐스터

데일리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