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죽은 것 같아요" 대통령에게 공개서한 보낸 대학생

목수정 2021. 1. 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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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바스티유광장] 코로나 1년, 거리로 나온 프랑스 청년들의 절규

[목수정 기자]

2020년은 1945년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적은 수의 아이가 태어난 해였다.

3-5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친 이동통제령이 사람들을 집안에 가두어, 더 많은 아이가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있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손 낳기를 주저했다. 지난 한 해, 74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전 해에 비하면 1만 3천 명이 줄어든 숫자이며, 10년 전과 비교하면 약 8만 8천명이 줄었다. 출산율은 1.84를 기록, 전년 대비 0.2 떨어졌다.

출산율 1.84

1993년 1.73의 출산율(74만 800명)로 최저점을 찍은 후 프랑스는 줄곧 출산율 상승세를 보이며, 2006-2014년엔 출산율 2를 넘어서는 유럽 내 출산대국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여전히 유럽에 가장 높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6년 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왔던 것도 사실이다. 출산율의 점진적 하락세는 유럽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최근의 하락 추세 외에도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역병이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당장, 지난 한 해 이뤄진 결혼식 수는 34% 감소했다. 총 14만 8천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고, 이 가운데 4천 건은 동성 커플의 결혼이었다.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려오던 결혼과 달리 주례나 증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간소한 절차인 시민연대계약(PACS)을 한 커플은 지난 20년간 수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고, 2020년 숫자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결혼식 건수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프랑스의 연간 출생아 그래프
ⓒ INSEE (통계청)
 
비혼 커플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가 절반이 넘는 프랑스 풍토상, 결혼식 여부 자체가 자녀 출산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줄어든 결혼식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수가 가정을 꾸릴 계획을 세웠으리란 점은 짐작 가능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시계 제로 속의 코로나 정국에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계획은커녕 당장 학업과 삶의 의미 찾기 자체를 단념하고, 길을 잃고 있다.

청년 30% 우울한 상태 

프랑스공공의료연구소(Santé Publique France)가 실시한 최근 연구(2020.12.18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2차 이동통제령이 실시된 11월 사이, 우울한 상태에 있다고 답한 프랑스인은 9월 11%에서 23%로 늘었다. 특히 18-25세 청년들 중 30%, 25-34세 청년들 중 25%가 우울증 상태다. 학교에 등교해 한 반 15명씩 앉아 수업을 이어온 청소년 층에 비해 전면 비대면으로 수업을 받은 대학생들의 우울과 무기력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2주 전 2명의 대학생 자살 소식은 그들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본 듯했다. 지난 20일에는 전국의 대학들이 소재하는 주요 도시(파리, 릴, 툴루즈, 렌, 리옹, 스트라스부르, 그르노블 등)에서 일제히 학생시위가 열렸다.
 
 2021년 1월 21일 프랑스 전역에서 대면 수업 재개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파리 시내를 행진하는 대학생들.
ⓒ RT France 화면 캡처
 
전국대학생연합(UNEF)을 비롯 각 정당의 대학생 조직들이 빠짐없이 깃발을 들고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그들이 주장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대학은 문을 활짝 열라, 교수와 교우들을 직접 만나 수업하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우울증과 열악한 생존 조건으로부터 청년들을 구하라는 것이다.

"저에겐 더 이상 꿈이 없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스트라스부르 대학 2학년 알리스는 "인터넷으로 진행되는 수업만 듣다 보니, 텅 비어 있다고 느낀다"고 자신의 감정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미래에 일하고자 하는 항공분야가 보건 위기 속에서 심한 타격을 받은 현실을 목격하며 길을 잃었다면서 대학생들은 정부에 의해 방치되고 잊힌 존재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또 다른 참석자 조에는 더 이상 원거리 수업을 지속적으로 따라갈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며, 학업의 의미 자체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고 고백했다.

"나는 대학에 와서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만나 부딪히며 건설해 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모든 도구를 빼앗겼다. 우리는 미래를 전망할 수도 없고, 방안에 고립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내 상태를 자각하며, 급히 정신 상담을 받으러 갔다."

학생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교수 니콜라 뿔랑은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내면의 세계에 갇히고 있고,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들의 메일을 팬데믹 초기보다 연말에 더 많이 받고 있다"라며 "지난 시험에서 여러 학생이 백지를 제출했고, 그 중엔 뛰어난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교수들은 심리학자나 사회복지사가 아니므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1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년들은 세상을 향해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통령님, 저는 19살입니다. 저는 제가 죽은 것 같다고 느낍니다. 저는 공부를 해야 할 나이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허락해주는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19살이고, 제 책상과 제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은 저의 휴식 공간이기도 하며, 전화하고, 영화 보며, 요리도 하는 공간입니다. 모든 것이 제 머릿속에서 혼란스럽게 엉킵니다. 수업은 제 방에서 이뤄지고, 제 방이 바로 제 교실입니다. 문제는, 저에게 더 이상 꿈이 없다는 겁니다. 모든 저의 프로젝트들은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2021년 한 여대생(스트라스부르 시앙스포, 하이디 수폴트)이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편지.
ⓒ 자료사진
 
실존적 위기에 처한 자신의 모습을 절절히 담은 대학생(스트라스부르 시앙스포, 하이디 수폴트)이 1월 12일, 페이스북과 학교신문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의 한 대목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대해 15일 "청년의 분노를 이해한다. 정부가 애쓰고 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자" 라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이어, 학생들의 집회가 열린 다음날인 21일, 마크롱은 청년들의 절규에 대해 몇 가지 대안을 급히 내놓았다. 1유로로 하루 두 끼를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쿠폰, 1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대면수업 참가, 심리적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심리상담 수표 발행 등이 그것이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것으로 유령이 되어버린 우리 세대를 달랠 순 없을 거예요… 내 친구들 대부분은 집회에도 나오지 않았어요. 걔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 거죠. 마크롱이나 카스텍스(총리)가 제시하는 그 사이비 조치로 우리가 다시 살아있다 느끼게 하긴 힘들 거예요."

리옹 2대학에 다니는 메디의 평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파리 서쪽 오르세에 있는 파리 사클레 대학의 나노과학 및 나노테크놀로지 센터를 찾아 대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집회를 마치고 강당에 모여 가진 총회에서 다수의 학생들은 "작금의 위기는 보건위기이기 보다, 민주적 방식을 상실한 정치적 위기"라는데 뜻을 모았다. 적어도 그들에게 정부가 유일한 출구로 제시하고 있는 백신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할 대안도, 해법도 되지 못하는 듯하다.

"학생들은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우리가 살아있을까?"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집회에서 학생들이 들고 있던 현수막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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