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삶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최문갑 2021. 1. 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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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박한표 학장
우리는 놀 줄은 알면서 쉴 줄은 모른다. 우리는 실제 일상에서 내려놓는 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주로 '일을 해 나가는' 기술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내려놓는' 방식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긴장을 푸는 방법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최근에 잘 사는 방법은 긴장의 양과 이완의 양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삶은 그러니까 '균형 맞추기'이다. 비슷한 양과 질로 말이다. 

이완이란 긴장을 푸는 일이다. 이는 진짜 '쉬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외부 자극 없는 시간 보내기'이다. 산책이 좋다. 아니면 명상도 괜찮다. 쉰다는 것은 삶을 건사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불안과 우울, 압박감 같은 감정들을 다른 자극으로 눙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직시하고 다독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몇 일전부터 공지영 작가의 최근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읽으며 큰 위안을 받고 있다. 이완하는 좋은 방법은 지금-여기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특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지 못한다. 늘 비우려기 보다는 성취를 고민한다. 자본주의가 꼬드기기 때문이다. 쉴 틈이 생기면 쉬는 게 아니다. 삶을 지탱하느라 들쑤셔진 마음을 다독거릴 재주가 없어 또 다른 자극을 주입한다.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대신, 정신이 쏙 빠지게 단 콜라 따위를 물려준다. 질리고 움츠러든 마음은 달콤한 흥분으로 덧씌워졌지만 그게 진정한 이완은 아니다. 

이런 식이다. 각성상태가 나를 피로하게 하지만 제대로 이완하는 법을 모르기에 마취를 택한다. 예를 들어, 삶을 지탱하느라 이어지는 흥분과 불안에 지친 상태에서, 말 잔치만 이어지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두거나 아예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먹방 따위를 본다. 혹은 SNS에 접속해서 무한대로 펼쳐지는 타인들의 삶을 지문이 닳도록 문지른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알고리즘의 신에게 혼을 빼앗겨 무더기 같은 영혼으로 헤매다 동틀 무렵 어느 벌판에 쓰러져 잠들곤 한다. 홍인혜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다. 

휴식, 진짜로 쉴 줄 아는 것은 능력이다. 잘 놀고, 잘 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거기에도 삶의 내공이 필요하다. 제대로 쉬려면, 일단 노동과 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낮의 노동이 힘든 건 노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소외와 압박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소외이고, 의지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압박이다. 그러니까 쉰다는 건 앞의 두 가지, 즉 소외와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과 쉰다고,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가족은 감정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배설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삶의 배치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노동의 스트레스와 감정의 배설로부터 벗어나는 활동 혹은 관계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조용히 혼자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하면, 소외와 압박에서 벗어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지성을 중심으로 관계를 재구성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모임도 좋다고 한다. 특히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낭송이 몸을 이완시키는 데 최고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소프라노한테 배운 노래를 내 방식대로 큰 소리로 부르며, 가창력이 향상되는 기쁨을 느끼고,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 늘어나는 기쁨이, 나를 몸과 정신으로부터 이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고 있다. 그래 나는 집 근처에 그런 장소를 갖고 있다. 나는 그 방 이름을 '세심실(洗心室)'이라 졌다. 

시 낭송도 좋다. 그래 나는 노래를 하다가 잠시 멈추고 시 낭송을 혼자 큰 소리로 한다. 소리가 나려면 신장의 물과 심장의 불 그리고 폐의 조절 능력이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 오장육부의 순환에 아주 유익하다. 그런 측면에서 말은 가장 인간적인 활동이다.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일상을 산다면 불행하다.  

아니면, 산책을 하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머리를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배승민이라는 의사의 칼럼에서 읽은 것이다. 공유한다. "어느 날 진료시간에 '쉴 때는 주로 무얼 하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유치원생부터 초·중·고 학생까지, 그리고 그들의 부모마저 같은 답을 했다. '스마트폰 보죠 뭐.' 나 역시 업무 뿐 아니라 자투리 시간에도 언제 급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핑계로 좀처럼 폰을 내려놓지 못하지만,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도 세대를 막론하고 천편일률로 단 하나의 방법만을 찾는다는 것은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스마트’하게 쓰지 않는다면 집중력까지 망치기 쉬운 썩은 동아줄 같은 그것이 모두의 유일한 도피처라니 말이다. "  

수년 전 <멍 때려라>라는 책이 있었다. 그만큼 바쁜 현대인에게 뇌를 쉬게 하는 시간이 얼마나 절실한지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의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 탓에 아직 말도 못 뗀 영유아까지도 멍 때리는 놀이 시간을 도둑맞고 있는 것 같다. 식당에서 어린 꼬마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의사 배승민의 쉬는 방법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이런 식을 하는 것이다. "주차장같이 꽉 막힌 지루한 고속도로 출퇴근길, 아무리 바빠도 길 위에 갇혀 있는 셈이니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거나 창밖을 보며 쉴 수밖에 없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만 해도 미세먼지 가득한 퀴퀴한 날씨 탓에 창 밖이나 안이나 암울하기 그지없었건만, 요즘은 코로나 시대의 장점일지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가도 창틀이 액자로 보일 만큼 선명하게 빛나는 하늘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게 멍하니 낯선 곳에 떨어진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창밖을 보다 보면, 어느새 지친 나를 저 하늘이 가만가만 위로해 주려는 건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든다. 빈부나 지위와 무관하게 우리가 보는 하늘은 똑같은 곳에 있다. 잠시 뇌의 인위적인 과열을 식힐 겸 시간의 흐름이 선물해주는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우리 뇌에 꼭 필요한 ‘멍 때리기’와 함께." (배승민- 나는 늘 다니는 탄동천 산책길에서 멍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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