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로봇이 일어서자 아이가 웃었다..장난감수리공 된 교장쌤
![최병남씨가 수리 의뢰받은 장난감을 분해해 고치고 있다. [최씨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1/22/joongang/20210122050136817goks.jpg)
“5일 동안 낑낑댔죠. 그래도 고쳐진 장난감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 표정을 생각하면….” 최병남(72)씨는 장난감을 고친다. 일터인 인천 남동구 평생학습관에서 만난 그는 ‘환희의 순간’을 얘기하며 미소 지었다. 5일 동안 낑낑댔던 기억은 2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원숭이 로봇을 고쳐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색이 다른 공 다섯개를 로봇에 넣으면 불빛이 반짝이면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공을 넣어도 로봇은 미동이 없었다. 로봇 내부 축이 망가진 탓이었다. 망가진 축을 대신할 부품이 없었다. 창고를 뒤져 꺼낸 부품을 붙이고 떼며 수리에 몰두한 지 5일째. 원숭이 로봇의 입이 다시 트였다.
원숭이 로봇의 주인인 아이와 아이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리를 맡겼는데, 제일 좋아하던 로봇이 말끔히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연신 최씨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고 한다. 최씨는 “수리가 가장 오래 걸린 일종의 정형 수술이었다”고 회고했다. “못 고치면 아이가 실망할까 봐 걱정했는데 잘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그는 영락없는 외과의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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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엄마 도우려 시작한 장난감 수리

장난감 수리공은 최씨의 첫 직업이 아니다. 전직은 교사였다. 인천 정석항공과학고에 몸담으며 37년간 항공기 장비 정비 교육을 했다. 지난 2011년 초 교장으로 퇴임한 그에게 후배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뭔가를 고치는 일에 일가견이 있으니 아이들 장난감을 고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다 늙어서 무슨 장난감이냐”며 처음엔 웃어넘겼다. 그러다 우연히 고장 난 장난감으로 골머리를 앓는 초보 엄마 이야기를 들었다. 장난감 수리는 업체에 맡기면 보통 1달 정도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했다. 오래된 장난감은 수리 자체가 힘들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엄마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그렇게 최 교장쌤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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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수리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최씨와 동료들이 장난감 수리에 몰두하고 있다. [최씨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1/22/joongang/20210122050138919mqcu.jpg)
주위 도움으로 작은 수리공간을 마련하고 인터넷 카페에 무료 수리를 공지한 지 3일째. 첫 연락이 왔다. 전남 해남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아노 장난감이 고장 났는데 집 근처에는 수리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택배로 장난감을 보내왔다. 간단한 수리였지만 정성을 다해 고쳐 돌려보냈다. 처음이라 공을 들였는데, 감사 인사가 돌아왔다. 가슴 깊이 뿌듯함이 번졌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수리 의뢰가 들어왔다. 은퇴 후 소일거리였는데 일이 커진 것이다. 퇴직한 동료를 비롯해 지인들이 하나둘 힘을 보탰다. 사정을 알게 된 인천 남동구청은 평생학습관에 수리센터 공간을 제공하고 2019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 수리 의뢰인들은 택배비만 부담하면 공짜로 수리를 받을 수 있다. 최씨를 포함해 총 10명의 ‘의사’들이 상처 입은 장난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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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여 개 수리하고 교본도 만들어

최근 2년간 최씨 등의 손을 거친 장난감은 6000여개다. 대부분이 생명을 되찾아 주인에게 돌아갔다. 95%에 달하는 수리율에도 최씨는 고치지 못한 장난감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의 실망한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말로 전하던 수리 방법을 정리해 교본으로 만들었다. 실망한 아이들이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가장 고치기 어려운 전자회로 기판 문제를 제외하면 대다수 장난감은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그렇게 노력하며 최대한 오래 장난감 수리공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고친 장난감을 돌려받는 아이를 볼 때면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느낌을 기억하며 힘이 닿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장난감 수리공이 된 교장쌤의 소망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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