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석 (28) 한국의 미에 눈뜨고 도자기·민화에 반한 20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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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중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도쿄의 도립미술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내가 옛 도자기에 밴 한국의 아름다움과 정감을 느끼면서 그간 비어있던 정서의 여백을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값어치 없는 도자기도 우리 선조, 그것도 서민이 쓰던 것 아닌가.
시간이 허락되면 종종 그 방에 혼자 앉아 내 손을 떠난 도자기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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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조선 초기 옛 도자기에 마음 뺏겨
민화로 관심사 넓히며 더 깊이 빠져들어
일본 유학 중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도쿄의 도립미술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덕에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을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여러 전시회를 보며 어렴풋이 회화 속에 스며든 예술성 비슷한 걸 느꼈다. 세계일주여행 중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을 다니며 교과서에서 배운 예술 작품을 보면서도 그랬다.
이런 이유에선지 1960년대부터는 서울에서 매해 열리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빠지지 않고 관람했다.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의 그림이 좋았다. 박수근의 그림도 인상 깊었다. 나중엔 운보 김기창과 인연도 있어 그의 그림에도 흥미를 느꼈다. 문인화를 보기 위해 관련 책을 보다가 우연히 조선 초기 도자기에 마음을 뺏겼다. 60년대 후반에는 인사동이나 장안평, 청계천에 가면 옛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쯤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인사동 일대의 도자기 가게를 찾아 구경하는 재미를 붙였다.
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잘 모르고 자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제국주의식 교육을 받았다. 이후엔 서양철학을 하는 바람에 한국적인 것을 찾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 자라 서구적인 것에 더 많이 노출됐다. 그런 내가 옛 도자기에 밴 한국의 아름다움과 정감을 느끼면서 그간 비어있던 정서의 여백을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자기에서 민화로 관심사를 넓히면서 더 깊은 한국의 미를 깨닫게 됐다.
옛 도자기와 민화, 골동품 등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쏟는 세월은 20년 정도 이어졌다. 골동품에 관심을 두면 소장 욕구도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재정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친구들에게 소장을 권하곤 했다. 나는 금전적 가치는 없어도 우리 선조의 얼과 삶의 흔적이 담긴 물품을 모아보자고 생각했다. 값어치 없는 도자기도 우리 선조, 그것도 서민이 쓰던 것 아닌가. 값이 있는 고귀한 골동품은 개인이 아닌 박물관이 소장해 여러 사람에게 소개되는 것이 옳다는 게 내 소신이다.
한국 도자기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조선시대 백자다. 백자의 흰색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게 다채로울 수 없다. 그 백색 속에는 무한한 깊이가 있다. 백자를 보면 우리 선조의 고결한 성품, 순박한 정서, 꾸밈을 모르는 순수성, 흰옷을 좋아한 전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도자기 못지않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건 민화다. 운보의 집에 갔을 때 오늘날 추상화가가 그린 것과 별 차이가 없는 듯한 민화를 봤다.
내가 갖고 있던 민화 몇 점은 주변 애호가나 박물관에 기증했다. 400여점의 도자기는 모두 강원도 양구의 근현대사박물관으로 보냈다. 일부는 양구 인문학박물관에 재현된 내 방에 전시돼 있다. 시간이 허락되면 종종 그 방에 혼자 앉아 내 손을 떠난 도자기를 찾아본다. 그 자리에 앉으면 내가 살던 옛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을 느낀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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