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이 장면] 조제
이누도 잇신이 연출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의 리메이크인 ‘조제’는, 원작의 영향력 안에 있으면서도 김종관 감독이 긴 세월 동안 축조한 소우주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하다. 수경(이소희)의 대사처럼 “낡았지만 정감 있는” ‘조제’의 세계 안에선 모든 것이 오래된 사물이다. 이 영화에선 집도, 그 안의 세간살이도, 조제(한지민)가 타는 휠체어도 낡았다. 조제와 영석(남주혁)의 관계는 “밥 먹고 가”라는 조제의 한 마디에서 비로소 시작되는데, 이때 그 밥상마저 낡았다. 헌책방과 고물상도 등장한다. 그중 가장 낡은 것은 골목이다. 이 영화에서 ‘낡음’이라는 시간의 가치는 이 골목 이미지를 통해 공간화된다. 낙서로 얼룩진 담벼락, 누군가 세워놓은 자전거, 거미줄처럼 퍼진 전봇대 위의 전기선…. 이런 추억의 이미지들이 응축된 ‘조제’의 골목은 이 영화만의 정서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조제가 영석에게 마음을 여는 곳도 바로 이 골목이다. 어느 밤, 다시 오지 말라는 말에 조제의 집을 나선 영석은 뒤를 돌아본다. 이때 힘겹게 골목으로 나온 조제는 말한다. “가지 마… 옆에 있어 줘.” 두 사람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포근한 눈이 내리며 그 골목을 조용히 덮는다. 영화 도입부에 ‘철거’와 ‘재개발’ 구호가 걸려 있던 골목은, 이 장면에서 마치 치유되듯 따스한 공간으로 변해 있다. 조제의 마음이 그렇듯 말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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