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공채·내부 발탁 안녕~ 순혈주의 타파 봇물

박수호 2021. 1. 2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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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은 최근 조영서 전무를 경영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그런데 조 전무 이력이 독특하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앤컴퍼니, 베인앤컴퍼니에서 17년간 금융 분야 컨설팅을 했던 그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취임 후 ‘외부 영입 1호’로 스카우트했던 인물이다. 그는 디지털, AI 전담 자회사인 신한DS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KB금융으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 정기 인사를 통해 지주 경영연구소장(전무) 겸 KB국민은행의 신설조직인 DT(디지털 전환)전략본부장에 선임됐다. 공채 위주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금융회사들이 최근 인사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외부 인력에 문호를 개방하고 필요하면 고위직군에도 파격 대우를 약속하며 스카우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금융권 외부 인사 개방 왜?

▷소비자, 대외 환경 변화

과거 금융권이 외부 인사를 영입하던 방식은 정관계 혹은 금융감독당국 출신을 사외이사 혹은 준법감시인 정도의 특수직에 앉히는 식이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전방위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장성철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권은 규제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규정된 업무만 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빅테크 등 이종업계도 속속 금융 분야에 진출할 뿐 아니라 디지털 전환, 소비자 보호, ESG 등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트렌드가 달라졌다. 금융사가 공채로 인재를 육성하던 방향과 다른 대응 방식이 필요한 때다.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사내 문화에 변화를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금융사는 특히나 보수적인 문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MZ세대가 주류로 등장하는 분위기에서 언제까지나 이런 분위기를 고수할 수는 없었다. 시대 흐름에 맞게 사내 문화를 보다 개방적으로 바꿀 필요가 생겼다. 외부 인재 영입이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외부 인재 선호하나

▷IT·디지털 전문가 영입 1순위

IT 인력 전문 채용 플랫폼 그렙은 최근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권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확영 그렙 공동대표는 “금융사가 디지털 인력을 꾸준히 공채로 충원해오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최근 빅테크나 핀테크에서 일하는 스타급 개발자를 찾고자 하는 금융사가 꽤 있다. 디지털 상품 개발,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 갖춘 인재를 찾아달라는 금융권 요구가 쇄도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시중은행의 외부 디지털 전문가 영입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신한금융그룹은 2018년 금융권 디지털마케팅 전문 컨설턴트 출신인 이성용 전 베인앤컴퍼니 한국 대표를 미래전략연구소 대표로 영입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월부터는 그룹 전체의 디지털금융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신한 DS 대표이사 겸 그룹 CDO(그룹 최고디지털책임자·부사장)로도 선임돼 그룹 체질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2020년 12월에는 삼성전자 총괄사업부 부장(CRM), KT AI 빅데이터사업단 상무 출신 김혜주 씨가 그룹 빅데이터부문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지난 12월 인사에서 그룹 빅데이터 부문의 초대 상무로 선임된 김혜주 상무는 신한금융지주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기록됐다.

KB국민은행도 2019년 삼성전자와 삼성SDS, 현대카드를 거친 빅데이터 전문가 윤진수 부행장을 영입했다. 삼성전자 출신 유세근 본부장에게는 새해 클라우드플랫폼단을 맡겼다.

우리은행은 2018년 휴렛팩커드(HP) 출신 황원철 씨를 디지털금융그룹장으로 들인 후 최근 승진 발령을 냈다. 지주에서는 디지털추진단장(전무), 우리은행에서는 부행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 전무는 우리은행 앱 ‘우리원(WON)뱅킹’을 개발하고 글로벌, 맞춤형 서비스 등을 주도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18년 김정한 삼성전자 DS부문 소프트웨어연구소장을 데려와 최고데이터책임자(CDO·부사장) 직함에 하나금융지주 차원의 ‘DT랩’ 지휘까지 맡겼다. 농협은행도 지난해 7월 이상래 전 삼성 SDS 상무를 디지털금융부문장(CDO·부행장)으로 영입했다. 이 부행장은 준법감시인을 제외하면 외부 출신 첫 부행장이다. BNK금융그룹은 한국 IBM 출신 최우형 씨를 지주 산하 디지털D-IT부문 전무로 두고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도 지난해 신설한 MINT(Mobile Investment)부에는 소프트웨어, ICT인프라,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외부 IT 기업 출신을 대거 포진시켰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해당 부서는 해외 주식 소수점거래 서비스 ‘미니스탁’을 선보이며 시장 관심을 불러 모았다. 지난해 300만장 가까이 팔린 히트 상품 ‘온라인금융상품권’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외부 인력을 적극 영입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소비자 보호 인재 영입도

▷신한, 거시경제 전문 이건혁 선임

디지털 외 다양한 부문에서도 각 금융사 외부 인재 영입이 매우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그룹 미래를 그리는 기획전략 부문에 외부 인사를 채용하는 사례도 꽤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산하 미래전략연구소에 이건혁 대표를 선임했다. 이 대표는 국제통화기금(IMF) 아태지역국 수석조사관, 재정경제부 경제자문관, 삼성전자 미래전략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 등을 지낸 거시경제 전문가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거시경제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고, 그룹 사업포트폴리오 전반에 대한 리스크 관리 역량 제고 역할을 수행하라는 역할을 주문했다”고 소개했다.

메리츠금융그룹도 외부 인재 개방에 적극적이다. 메리츠화재는 ‘영업 현장 혁신을 통해 설계사들이 회사의 주인으로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CEO 직속 고객경험 TF를 신설했다. 맥킨지 출신 은상영 리더가 기획전략을 총괄한다.

소비자 보호도 외부 인재 영입이 활발한 부문이다.

하나은행은 국내은행 최초로 단행된 소비자리스크관리그룹을 신설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 시니어 변호사, SC제일은행 리테일금융 법무부 이사 등을 거친 이인영 씨를 그룹장으로 임명했다.

▶인재 개방 전략 성공하려면

▷보수적인 문화에서 ‘밀어내기’ 사례도

물론 외부 인재 영입 전략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모 금융사에 영입된 AI 전문가가 1년도 안 돼 이직해버린 사례도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일하는 방식과 사고가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보수성향이 강한 편이라 외부 인재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석집 대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입한 외부 인재에게 권한 위임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고 자체 인사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3호 (2021.01.20~2021.0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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