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무어 작품 세계 "뼈이면서도 돌 같기도..풍경이면서 인간인.."

2021. 1.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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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종종 잊고는 한다. 그 결과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화라는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마치 이런 일을 예측하고 경고라도 하려는 듯, 많은 예술가들은 오래전부터 작품을 통해 우리 인간이 광대한 자연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왔다.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로 높이 칭송받는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년)가 그 좋은 예다.

영국에서 가장 외지고 추운 요크셔 출신인 그는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미 조각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지만, 광부였던 아버지는 그가 선생님이 돼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를 바랐다. 아버지 희망대로 잠시 교사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군대를 제대하면서 결국 자신의 꿈을 좇아 예술 대학에 진학한다. 1921년 왕립예술대 장학금을 받아 런던으로 간 무어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부지런히 다니며 여러 다양한 문화의 조각을 접하게 된다. 이때부터 아메리칸 인디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원시예술에서 이상적인 조각미에 대한 영감을 찾게 됐다. 특히, 1925년 파리 여행 중 본 아즈텍 문명의 조각상 전시는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기댄 형상: 축제’. 무어의 전작 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은 작품. 2016년 6월 30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 에 출품돼 2400만파운드(약 360억원)에 판매됐다. 무어의 작품 중에서는 물론, 영국 조각가의 작품 가운데 지금까 지도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기댄 형상: 축제(Reclining Figure: Festival, 1951년)’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1949년 영국 예술위원회 의뢰로 시작됐다. 2년 후 예정된 대형 문화축제 행사장에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이 축제의 100주년 기념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최신식으로 지어진 전시회장 입구에 설치될 작품이었다. 위원회는 가족상을 의뢰했지만, 무어는 비스듬히 기대어 누운 형상을 제작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인물상이면서 동시에 자연 풍경 같은 독특한 형태가 ‘사람과 땅의 관계’와 영국의 농경 역사를 보여주려는 행사 취지에 잘 맞아떨어져 큰 문제없이 설치가 이뤄졌다.

무어는 1920년대 후반부터 기대어 누운 형상에 대해 탐구해왔다. 이 주제를 다룬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기댄 형상: 축제’는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20여년이 넘는 선구적인 탐험의 성취를 보여주는 궁극의 결과물이자 집성체라 할 수 있다. 예술적, 기술적 성숙의 절정을 증명하는 이 청동 조각은 1951년 제작 당시 그의 기댄 형상 가운데 가장 율동적이고 선적인 형태를 띤 것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시도에 해당했다. 또한 2m가 넘는 크기로 기댄 청동 조각으로는 가장 컸다.

오늘날에는 빈 공간이 포함된 물결치는 듯한 양식이 모던 조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저항감도 만만치 않았다. 이 문화축제 이후, 보수 성향 지역으로 옮겨져 설치됐을 때 파란색 물감으로 조각 전체가 지저분하게 덮인 적이 있다. 1956년 원상회복 후,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에서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총 6개 에디션 가운데 나머지도 테이트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중 유일하게 개인 소장가 손에 남아 있던 한 점이 2016년 6월 30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출품돼 2400만파운드(약 360억원)에 판매됐다. 이는 무어의 작품 중에서는 물론, 영국 조각가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에 해당된다.

그가 기댄 형상을 선호한 것은 서 있거나 앉은 형상보다 안정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구성과 공간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창작의 자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기댄 형상: 축제’가 보여주듯 기댄 형상은 전통을 깨는 급진적인 시도를 가능케 하면서 모순되게도 가장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태에서 발견되는 조각적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기댄 형상 자체가 가장 오래된 조각의 주제이자 전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가 선보인 또 다른 획기적인 발명은 조각 표면을 따라 나타나는 율동적인 패턴에 기하학적 선을 더한 점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가슴과 머리 같은 신체 부위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기대어 누운 여인이 곧 산과 계곡, 동굴, 절벽이나 언덕 같은 풍경처럼 보인다. 물결처럼 굽이치는 율동적인 형태가 신체인 동시에 풍경을 연상시킨다. 즉 인물이면서 풍경이자, 풍경이면서 인물인 조각인 셈이다. 그야말로 자연 합일의 극치가 아닌가. 구상과 추상 사이의 경계에 의도적으로 머물면서 안과 밖, 채움과 비움의 우아한 조각적 합성을 보여준다. 아즈텍 문명의 조각상 등 원시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자신만의 양식으로 극대화한 이 작품에 대해 무어 자신도 ‘형태와 공간을 조각적으로 융합하는 데에 성공한 첫 번째 작품’이라며 자신의 전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가했다. 이후에도 그는 나무, 돌, 뼈, 조개껍질 같은 자연물과 풍경에서 예술적 영감을 추구하고는 했다.

‘세 개의 부분을 위한 작업 모형 3번: 척추’. 여러 개의 부분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총 길이가 2m가 넘는 크기의 추상 청동 조각으로 2012년 2월 7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500만파운드(약 75억원)에 판매된 적 있는 작품이다.
‘두 여인과 아이’. 조각만이 아니라 독특한 방식으로 인체를 3차원적으로 표 현한 무어의 드로잉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2019년 5월 13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300만달러(약 33억원)에 판매된 바 있다.
후기작의 대표적인 예로 ‘세 개의 부분을 위한 작업 모형 3번: 척추(1968년)’를 들 수 있다. 그가 평생 탐구해온 비스듬히 누운 형상이 공간적, 형태적, 유기체적 변형을 통해 더욱 추상적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추상 조각으로 보이나 자연의 일부인 인체 척추뼈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이에 대해 무어는 “추상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전부 유기적 형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분리된 몇 개의 부분이 하나의 형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개념을 조각에 도입해 추상적이면서도 고대 유물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시대를 초월하는 미를 선보였다. “자연을 공부하면서 형태와 리듬의 원칙을 찾아냈다. 자갈과 바위는 돌을 작업하는 자연의 방식을 보여준다”는 그의 말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의 하나 됨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헨리 무어의 작품들. 뼈이면서 돌처럼 보이기도 하고 풍경이면서 또 어느새 인간 형상이 되는 그의 조각이 일깨우듯,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고 산다면 지구를 되살릴 수도 있지 않

을까.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3호 (2021.01.20~2021.0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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