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아동 인권과 행복, 아이들 관점에서 보아야

2021. 1. 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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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연세대 교수·사회학과)


정인이의 비극적 사망 사건이 새해 벽두부터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정인이가 병원에서 사망한 것은 지난해 10월 13일이었지만 방송에서 이 충격적인 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양부모에 대해 인면수심이라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SNS에서는 대규모로 추모와 애도 캠페인이 일어났다. 최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이 사건은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런데 정인이 사건의 재발 방지책으로 입양 절차 개선을 내세운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또다시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에는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생후 16개월에 불과한 어린이가 학대로 의심되는 이유로 사망했다. 아직 말을 못해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아이가 어른들의 폭력과 방관으로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한다.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반응을 잃어버린 정인이 모습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둘째 정인이가 친모의 손을 떠나 생후 7개월 무렵 입양된 후 9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으며, 양부모가 정인이를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입양했을 뿐 아니라 아이에 대한 사랑도 없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의 출발이어야 할 입양이 끔찍한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셋째 정인이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했어야 할 어른들이 책임을 방기했다. 학대 아동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의사나 교사 등 신고의무자가 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한 비율은 2019년 전체 신고의 23%에 불과하다. 정인이 사건에서도 입안 상처에 구내염 진단을 내린 소아과 의사가 정인이의 학대 가능성을 놓쳤을 뿐 아니라 경찰도 학대 신고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살기 힘들고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인이 사건은 우리를 집단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추모와 애도, 분노가 지나가면 우리는 또다시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어떻게 지켜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2019년 아동 학대 피해 건수는 3만건을 조금 넘었다. 10만명당 380명이 넘는다. 2014년 1만건을 조금 넘었던 것에 비해 5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난 셈이다. 아동 학대로 인한 사망 건수도 2014년 17건에서 2019년 42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중 절반은 1세 미만 아이다. 하지만 피해 건수 증가를 반드시 학대가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여성가족부가 2010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를 때리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14년 이후 학대 피해 급증은 2013년 울산 계모의 학대 살인 사건 이후 아동 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도 관련이 깊다.

입양은 어떤 상황인가? 한국은 줄곧 해외 입양이 국내 입양을 앞서다 2000년 이후에야 바뀌었다. 입양 건수는 2000년 4000건 이상에서 2010년 2000건 이상으로, 2015년 이후에는 1000건 아래로 떨어졌다.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입양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입양 건수는 더욱 줄고,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입양 관련한 절차 진행이 어려워 그나마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입양 절차와 사후 관리의 보완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그 때문에 입양이 더 줄어든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 몫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동 학대를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더 실효성 있게 처벌하고, 학대 아동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 입양을 장려하되 교육과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해서 아이들의 행복을 책임져야 한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아이가 한 명이라도 더 인권을 보호받고 행복하도록 해주는 것이 국가의 우선 책무다. 그런데 한국은 아동 인권 보호가 어른에 훨씬 못 미치고, 아동 행복지수도 어른보다 훨씬 낮은 최저 수준이다.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각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국민 누구나 아동 인권을 존중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입장을 우선시해야 한다. 주장과 요구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모두가 할 때 정인이 사건 같은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한준 (연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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