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속 '장애인 문턱'에 막혀.. "목회자의 꿈 접습니다"

황인호 2021. 1.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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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에 자퇴서 낸 중증뇌병변장애 유진우 씨
중증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유진우씨가 지난 18일 전북 군산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목회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장애인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군산=강민석 선임기자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3학기째 다니던 유진우(26)씨는 지난해 12월 종강 2주를 앞두고 자퇴서를 냈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중증뇌병변장애를 가진 유씨를 채용하는 교회가 없었다. 그는 자퇴서에 “대학원에 들어와서 느낀 건 장애인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 “장애인으로 목사가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제도 때문이든 암묵적 동의 때문이든 회의감이 들어 더는 신학 공부를 할 수 없다. 그만두려 한다”고 썼다.

전북 군산에서 지난 18일 만난 유씨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의 자취방도 모두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유씨가 자퇴 의사를 밝혔을 때 교수들은 “한국교회가 변하려면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며 하나같이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유씨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제가 목사 안수를 받는다 해도 과연 사역할 곳이 있을까.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고 씁쓸히 말했다.

유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이 목사였다. 이 꿈은 고3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한일장신대를 거쳐 한신대 신대원에 입학한 것도 목회자의 꿈을 좇아서였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예수님과 같은 목회자가 되고 싶었다. 그가 가진 장애는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강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유씨의 바람과 달랐다. 유씨는 신대원 입학 첫해인 2019년 필수과목인 목회 실습을 위해 전도사로 지원한 12개 교회로부터 함께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12개 교회 중 6개 교회가 거절 사유로 유씨의 장애를 들었다. ‘교회 화장실에 턱이 있어서’ ‘운전도 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휠체어 이용자라서’ ‘교회에 축구부가 있는데 축구부를 지도할 수 없어서’라는 식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성경을 보는 유씨의 모습. 군산=강민석 선임기자


유씨는 지원했던 교회로부터 들었던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 교회는 휠체어로 움직이기에 무리가 없는지 직접 와서 보라고 했다”며 “가서 보니 충분히 가능해 문제없다고 답했는데 이튿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뽑혔다’고 하더라”고 했다. “다른 한 곳은 담임목사에게 제게 장애가 있다는 걸 보고하고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여태껏 답이 없다. 교회 재건축 중이라 어렵다고 말한 곳도 있다”고도 했다.

유씨는 벽을 느꼈다. 교수들에게 사역할 수 있는 교회 소개를 부탁했지만, “기다려라”는 답만 돌아올 뿐 변하는 건 없었다. 그가 한신대에 진학한 배경에는 개신교 교단 중 누구보다 인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기장 교회조차도 장애인인 그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유씨는 2020년도엔 어떤 교회에도 지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되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목회 실습은 교회 순방으로 대체됐다.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예배를 경험하고 보고서로 제출했다. 이렇게 유씨는 필수과목을 이수할 수 있었지만, 목회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고갈돼 갔다. 졸업을 해도 목사가 되기 위해선 2년간 전도사로 근무하는 목사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목사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수련과정을 거쳐 목사고시까지 응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잠언 16장 9절 말씀을 좋아하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씀이 허무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유씨는 장애인차별철폐추진연대와 함께 기장 교단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낼 계획이다. 그는 “장애인 신학생이 목사가 되려면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라며 “차별이 없어야 할 곳에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목사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장애인도 있다”며 “학교와 교단이 이를 잊지 말고 장애인 신학생들이 목회자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산=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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