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37년간 입양 주선 8000건, 아이 교체 요구 한 번도 없었다"
"입양 확정 전에 아이 맡기는 건
양부모와 애착 관계 형성 위한 것
아이 바꿀 기회? 비인도적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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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업무 37년 김혜경씨의 증언
한국에 4대 입양기관이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성가정입양원. 앞의 세 곳은 국내·해외 입양을 모두, 성가정입양원은 국내 입양만 주선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된 입양기관들이 있지만 80% 이상의 국내 입양이 이 네 곳을 통해 이뤄진다. 해외 입양은 100% 세 곳을 통해 성사된다.
김혜경(62)씨는 동방사회복지회에서 37년7개월 동안 입양 업무 담당자로 일하고 지난해 10월에 정년퇴직했다. 최종 직함은 입양사업부장이었다. 한국에서 입양 실무에 가장 오래 종사한 이로 볼 수 있다.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으로 입양 문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정인이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게 양부모라는 것이 기본 배경이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두 차례 언급이 기름을 부었다. 한 번은 입양 관리감독을 강조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의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아이를 바꾼다든지” 발언이었다. 한 입양모는 “대통령의 인식에 치가 떨리는 분노를 느낀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전국입양가족연대라는 단체는 19일 국회 앞에서 대통령 발언 규탄 집회를 열었다.
김씨는 이 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에게 상담원으로서, 관리자로서 성사시킨 입양 건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략 8000건 정도 된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Q :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발언이 법원에서 최종 입양 허가가 이뤄질 때까지 입양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게 하고, 그 기간에 예비 양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해 관찰해서 문제가 발견되면 입양을 취소하도록 하는 ‘사전위탁보호제’ 도입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입양에 큰 변화가 생겼다. 종전에는 입양기관의 심사만 끝나면 입양이 됐는데 가정법원의 판사가 허가해야 입양이 가능하게 됐다. 지금은 4∼5개월로 이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이 줄었지만 초기에는 7∼8개월이 걸렸다. 태어난 지 100일 안팎에 아이들이 입양되다가 첫 돌 무렵에 입양이 되게 됐다. 예비 양부모들이 애가 탔다. 자기가 입양할 아이가 보호시설에서 계속 지내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아플까 봐, 정서 발달에 문제가 생길까 봐 발을 동동 굴렀다.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100일이 지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이 많이 생긴 뒤에 입양이 되면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이 어렵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입양기관이 정부 허락을 거쳐 법원 심사 기간에 양부모에게 아이를 인도하는 ‘임시인도’라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상 정부가 장려했다. 현재는 이걸 ‘입양전제위탁’이라 부른다. 지금 대부분의 양부모가 이 방식으로 아이를 미리 데려다 키운다. 법적 근거는 없다.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Q : 대통령 발언을 입양전제위탁 기간에 예비 양부모가 입양을 취소하거나 아이를 바꿀 수 있도록 해 학대 가능성을 줄이자는 것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입양 취소나 아이 바꾸기 요구가 얼마나 있나.
A : “내가 직접 겪은 범위 안에서는 아이를 바꿔 달라는 요구가 한 번도 없었다. 법원 심사 중에 입양 취소가 결정된 경우는 세 건이 있었다. 두 건은 생모가 마음을 바꿔 아이를 키우기로 한 경우였다. 한 건은 아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돼 양부모가 법원 허가 요청을 취소한 것이었다.”
Q : 입양했다가 파양한 사례도 있는데.
A : “파양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아이가 어렸을 때가 아니다. 대부분 아이가 일곱 살, 아홉 살 정도 됐을 때다. 서너 살 때는 예쁘기만 했던 아이가 고집이 생기고 말을 듣지 않자 아이 출생 배경에 대한 탓을 하게 되고 그게 부부 간 불화로 이어져 더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고 하는 게 전형적 사례다. 그런데 실제로 파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Q : 아이가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양부모도 있지 않나.
A : “돌이 지났거나 24개월 정도 자란 뒤에 입양된 아이들은 이미 여러 번 성장 환경이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친모, 친척 또는 조부모, 보호시설, 위탁가정 중 몇 곳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분리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동심리 전문가들은 아이가 불안을 경험한 시간의 두 배 정도가 그 상처의 치유에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 마음속의 ‘이들도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완전히 없애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아이가 잘 따르지를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호소하는 양부모에게 이런 아동심리에 관해 설명해 준다. 양부모가 사랑을 많이 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거의 다 해소된다.”
Q : 그렇다면 사전위탁보호제라는 것이 결코 입양 취소나 아이 바꾸기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A : “양부모에게서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 아동 보호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를 고르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일단 데려다 키워보고 판단하겠다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 그 아이들은 이미 친모 또는 원가정과의 분리라는 아픔을 겪었다. 거기에 상처를 더 얹는 것은 인도적으로도 용납돼선 안 될 일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아이를 입양할 때 남자아이, 여자아이도 고르지 못하게 한다.”
Q : 국내에선 여자아이 입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던데.
A : “90% 정도가 여자아이를 원한다. 상담원의 권유로 이 비율이 대략 80% 정도로 낮춰진다. 1980년대까지는 남자아이를 원하는 양부모가 많았다. 대를 잇는다는 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90년대 초반에 50대50이 되더니 그 뒤로는 계속 여아 선호 현상이 짙어졌다. 여아가 키우기 편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Q : 그러면 남자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A : “해외로 입양되거나 보호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해외 양부모들은 대부분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도 주로 해외로 간다. 국내에선 입양이 거의 되지 않는다.”
Q : 이렇게 다른 이유가 뭔가.
A : “우리는 ‘데려다 내 자식 만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해외 양부모들은 ‘아이가 가정에서 자라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차이를 만든다.”
Q : 통계를 보면 입양 건수가 많이 줄었다. 왜 그렇다고 보나.
A : “최근에는 국내 입양이 한 해에 도합 400건가량 이뤄진다. 1987년에는 동방사회복지회가 성사시킨 국내 입양만 606건이었다. 입양이 크게 줄어든 것은 저출산 현상과 맥을 같이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었다. 입양해서 아이를 기르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87년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Q : 정인이 사건 뒤 입양을 계획했다가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A : “괜히 의심받을까 봐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한다. 입양이 줄면 그만큼 보호시설에서 자라는 아이가 많아진다. 그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정부에서 주는 돈 500만원을 들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 ‘뇌피셜’이라는 게 있다. 뇌+오피셜(official·공식적인)의 합성어다. 근거 없는 주관적 믿음을 마치 사실에 부합하는 상식인 것처럼 말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입양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선 정부와 여당이 부디 입양가족, 입양기관 종사자의 이야기를 두루 들어 뇌피셜 오류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입양 상식
「 ① 해외 입양 땐 5개월 국내 입양 시도해야=입양기관이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5개월간 국내에서 입양을 꾸준히 시도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국내 입양 우선 정책 때문이다. 국내 입양 희망 부모에게 아이 관련 자료를 계속 제시해야 한다. 이 5개월 경과 규정 때문에 아이가 두 돌이 다 돼서야 입양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국내 위탁가정의 위탁모를 엄마로 알고 자라다가 외국인 부모 가정으로 보내진다.
② 해외 입양의 80% 이상이 남자아이=국내 입양에서 여자아이 선호 비율이 80% 이상이다. 그래서 주로 남자아이들이 해외로 간다. 해외 입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단체가 있는데, 국내 입양이 대폭 늘지 않는 상태에서 해외 입양을 줄이면 보호시설에서 자라는 아이가 늘게 된다.
③ 출생신고 돼 있어야 입양이 가능=현행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져야 입양 대상 아동이 된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인 경우 친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로 올라야 한다. 따라서 친모가 양육을 포기해 ‘베이비 박스’에서 발견된 아이는 입양기관이 맡아 입양을 보낼 수 없다. 아이를 돌보는 보호시설의 책임자가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해 입양이 되도록 할 수 있지만 그런 사례는 많지 않다.
」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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