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산파' 정의용, 3년 전 봄날 다시 꽃피울까
[김경년 기자]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018년 3월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대사. |
ⓒ 청와대제공=연합뉴스 |
"굿 이브닝. 오늘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근 저의 북한 평양 방문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는 영예를 가졌습니다."
3년 전인 2018년 3월 8일 저녁 7시 백악관 웨스트윙 앞뜰. 초로의 검은 양복 차림 한국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섰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사실과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한 사실을 전했다.
이는 빅뉴스가 되어 세계로 타전됐고, 실제로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기적같은 첫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양 정상의 만남은 두 번 더 이어졌고 '한반도의 봄'이 전개됐다.
위의 백악관 앞뜰에서 기자들 앞에 선 사람들은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조윤제 주미대사 등이었다.
그 중 가운데 섰던 정의용 전 실장이 20일 새 외교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당시 평양과 워싱턴을 직접 오가며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놨던 당사자이다.
▲ 신임 외교부장관에 내정된 정의용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 |
ⓒ 연합뉴스 |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발표 직후 "정의용 후보자는 평생을 외교·안보 분야에 헌신한 최고의 전문가"라며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장으로 3년간 재임하면서 한미간 모든 현안을 협의·조율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행을 위한 북미협상, 한반도 비핵화 등 주요 정책에도 가장 깊숙이 관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외교 전문성 및 식견, 정책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맞아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일본·러시아·EU 등 주요국과의 관계도 원만히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는 한반도평화 프로세스와 신남방·신북방정책도 확고히 정착·발전시키는 등 우리의 외교 지평과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잠시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 물러나 있던 그가 다시 외교의 전면에 나선 것은 정 수석의 말 그대로 '평생을 외교·안보 분야에 헌신한 최고의 전문가'로서 임기말로 치닫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서 다시 한번 '한반도의 봄'을 이뤄보라는 문 대통령의 주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대북, 대미 협상 전문가가 장관으로 온 만큼 외교부 수뇌부가 이전보다 묵직해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때마침 외교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정 내정자와 손발을 맞춰왔던 최종건 전 평화기획비서관이 제1차관으로 먼저 와서 앉아 있다.
정 내정자가 장관으로 오게 됨으로써 외교부가 '연정(연세대정외과) 라인' 일색이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게 됐다. 현재 강경화 장관과 최종문 2차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며 최종건 1차관은 이 학과 교수다.
한편 정 전 실장이 상대해야 하는 미국 국무장관에는 토니 블링컨 전 부장관이 내정돼 있다.
오바마 정권에서도 한반도 정책을 맡아왔던 그는 19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 문제가)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하겠다"며 "전반적 접근법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블링컨 내정자가 트럼프 시대의 '톱다운'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북접근법을 암시한 것이라며 긴장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는(재검토는)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 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나머지와 긴밀히 상의하고 모든 권유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도 말해 향후 대화파트너인 정 내정자가 그에게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는 "북한에서, 또 비슷한 상황에 처한 곳에서 우리는 문제가 되는 나라의 국민에 대해 분명히 유의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018년 3월 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왼손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와 맨 오른쪽에 김여정 노동장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보인다. |
ⓒ 청와대 |
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 3개월 정도 남았고 미국은 새 외교안보라인의 인사청문회로 인해 잠시 외교휴식기로 들어간다. 정 내정자는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3년 전의 봄날'을 다시 꽃피울 수 있을까.
정 내정자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외교정책이 결실을 맺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내정자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5회)에 합격한 뒤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을 거쳐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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