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골 극한의 하룻밤.. 고요가 내리면 사색에 빠진다

남호철 2021. 1. 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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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계곡 '북극 한파' 백패킹
강원도 인제군 오지인 A계곡의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에 불을 밝힌 텐트와 그 반영이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어두운 밤하늘엔 보석처럼 박힌 별이 혹한 속에 낭만을 더한다.


북극 한파에 얼음 위에서 잔다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 고생을 하며 백패킹을 하냐고 물으면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얻기에 한다’는 답이 대신한다. 이런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서 꽁꽁 얼어붙은 계곡으로 떠나는 이들도 있다. 세상은 문 밖에 있다.

강원도 인제군 오지에 위치한 A계곡은 요즘 많은 발길을 끌어들인다. 추운 계절에 즐길 수 있는 얼음 트레킹과 빙상 백패킹을 하려는 이들이다. 자연의 일부가 돼 한적한 계곡을 거닐고 조용한 곳에서 힐링할 수 있어서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야생냄새가 풀풀나는 백패커들이 속속 찾아온다. 낮 12시인데도 추위가 매섭다. 다음날 새벽에 기온은 더 떨어지고 바람까지 거세질 것이라는 예보다. 등에 거대한 배낭을 매고 얼음왕국으로 향한다. 하룻밤 잠자리를 위한 장비와 먹을거리에 카메라·삼각대 등 촬영 장비를 넣으니 110ℓ짜리 배낭도 부족하다. 무게는 30㎏을 넘는다.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떠오른다.

얼음 위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젠 착용은 필수다. 이미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혹시 얼음이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만 기대감과 설렘이 아드레날린 주사 마냥 몸과 마음을 흥분시킨다. 온전히 언 투명한 얼음을 보니 두께가 상당하다. 이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춥지 않은 계절엔 시원하게 흘러내릴 계곡이 얼어 물살을 헤치고 걷는 것보다는 수월하다. 여름철에는 수심이 깊어서 들어갈 수 없는 곳을 걸어볼 수 있는 특권도 누린다. 계곡 옆으로 산에서 흐르던 폭포수는 얼어붙어 빙벽을 이루고 있다.

수심이 깊지 않고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겨울철 계곡에서는 해가 일찍 넘어간다. 오후 2시에 이미 해는 산을 넘어 갔다. 하룻밤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텐트를 치고 발포매트 등으로 든든하게 ‘바닥 공사’를 한 뒤 침낭을 펼치니 20~30분 만에 ‘내 집 마련’이 뚝딱 실현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일몰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은 급강하하고 계곡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은 더욱 매섭다. 계곡에서는 전반적으로 통신이 두절된다. 전화도 인터넷도 불통이다. 텐트 안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검색 대신 사색(思索)’이 가능해진다. 추위 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사색(死色)이 될 수도 있다.

태양의 시간이 지나면 별의 시간이다. 어둠이 깔리면 맑은 하늘에 별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하나 둘 고개를 내민다. 머리 위로 쏟아질 듯한 ‘별 풍년’이다. 별빛 아래 불을 밝힌 텐트가 얼음에 반영되면서 예술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형형색색 얼음 위 궁전이다. 독특한 무늬가 그려진 불투명한 얼음 바닥은 마치 크리스탈 대리석 같다.

텐트 밖은 혹한의 겨울이지만 내부는 아늑하다. 침낭 속에 들어가면 혹한의 추위는 저만치 멀어져 간다. 얼음 아래 물 속에서 물고기가 유영할 것이니 수족관 위에서 자는 듯한 낭만의 밤이다. 밤새 얼음이 갈라지면서 만들어낸 영롱한 소리도 신비롭게 들린다.

공중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본 계곡 얼음 위 텐트촌.


혹독했던 밤을 지내고 맞이한 아침. 오전 7시 온도가 영하 11도. 여기 바람까지 더해져 체감온도는 영하 15도를 밑돈다. 텐트 바로 앞 얼음에 길게 이어진 금이 선명하다. 서둘러 철수한다. 머물렀던 자리는 아니 온 듯 흔적 없이(LNT·Leave No Trace) 정리한다. 이제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간다.

인제대교와 인제읍내가 보이는 박달고치.


인제에서 또 다른 백패킹 명소는 남면 원대리 비봉산 박달고치다. 소양강 상류 물줄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트레킹과 야영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남전리 햇살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거나 살구미마을에서 ‘인제 천리길’ 트레킹으로 닿을 수 있다.

인제 천리길은 인제 젊은이들이 옛사람의 자취·역사·문화가 서린 길을 걷기 좋게 연결하고 정비·복원한 걷기 좋은 길이다. 20개 코스에 총 길이 400㎞ 남짓 된다. 관대리 앞 1-1구간 소양강38선길의 ‘외로운 나무’ 주변을 가볍게 산책해도 좋다.

관대리 앞 소양강 변에 서 있는 ‘외로운 나무’.

여행메모
남전리 햇살마을~박달고치 3.5㎞
원대리 자작나무숲 ‘코로나 폐쇄’

강원도 인제 박달고치에 오르는 출발점인 햇살마을은 남면 남전리에 있다. 햇살마을에서 정상까지는 3.5㎞. 임도가 개설돼 있지만 겨울철에는 그늘진 곳에 결빙 구간이 많아 차로 오르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인제 천리길 1-1구간 소양강38선길은 44번 국도에서 인제38대교를 건너 3㎞가량 가면 닿는다. 입구에 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걸려 있고, 인증 도장을 찍는 곳이 마련돼 있다.

현리에서 방태산 가는 길가에 자리잡은 ‘고향집’이 이름난 맛집이다.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만드는 두부가 전문이다. 바지락과 새우젓, 질 좋은 고춧가루를 넣어 끓인 두부전골의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 큼직하게 썬 손두부를 무쇠 철판에 올리고 소금을 뿌려 들기름에 구워낸 두부구이는 담백하다. 인근 방동막국수도 유명하다. 막국수, 편육, 감자전이 주 메뉴다.

햇살마을 인근에 유명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있다. 자작나무와 눈이 어우러진 하얀 겨울을 만끽하려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출입할 수 없다.

인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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