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매력이 뭐길래..세대 구분없이 판화에 진심인 8인의 작가들
중견부터 신진까지 하나로
지난 50년 동안 나무판을 깍는 일에만 매달려온 작가가 있다. 올해 75세의 김상구 판화가.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76년부터 지금까지 목판화에 땀과 시간을 모두 바쳤다. 극도로 절제된 화면 구성에 섬세한 디테일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품은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미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지에 소장돼 있다. '한국 판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가 강행복(68),정승원(37) 등의 후배 작가들 7명과 함께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최근 개막한 '해학의 풍경'전이다.
이번 전시는 국내 화랑가에서 보기 드물게 열리는 판화전. 국내에서 내로라할 만한 목판화가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행복 등 중견 작가는 물론 독일 브레멘대에서 수학한 정승원 작가와 일본 타마미미술대 박사 출신인 홍승혜(39) 작가 등 세대 구분도 없다. 통인화랑에서 만난 김상구 작가는 "쉬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해왔지만 전시하자는 곳이 없었다"며 "그림과는 또 다른 판화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귀한 자리"라고 말했다.
목판화로 다양한 실험을 해온 김상구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비롯 올해 작업한 신작 여러 점을 내놨다. 김 작가의 작품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추상적인 도형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일찍이 그의 판화에 대해 "풍부한 색채와 더불어 목판 특유의 칼맛이 선명하게 부각된다"며 "그의 화면은 그림이자 동시에 시의 경지"라고 평가했다.
강행복은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목판화 외길을 걸어온 중견 작가다. 그의 작품은 리듬감 있는 선들로 구성한 조형과 수차례 겹쳐 찍어가며 드러낸 풍부한 색채가 압권. 그동안 제작해온 판화를 찍은 종이를 잘라서 실로 꿰맨 설치작품 '화엄' 연작을 내놨다.
전 국립 암센터장이자 대장암 명의로 유명한 박재갑(72) 서울대 명예교수의 작품도 눈에 띈다. 펜화와 판화를 꾸준히 해온 그는 2018년 작 '황소' 와 더불어 저어새와 왜가리가 평화롭게 어울린 풍경 '좋은 사회'(2017) 등을 선보인다. '황소'는 이응노의 그림이 원본이며, 정진웅 서각가가 작업한 판화를 박 교수가 본떠 다시 새기고 찍어낸 것. '황소'가 힘찬 선의 표현이 돋보이는 반면 '좋은 사회'는 세밀한 곡선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홍익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민경아(55) 작가는 한 화면에 현실과 상상의 이미지를 겹쳐 놓은 것이 특징이다. '서울,범내려온다'(2020) 는 고층빌딩과 한옥 지붕이 어울린 서울 풍경 위에 왕관 쓴 호랑이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단연 눈길을 끈다. 바로 '지금, 이곳, 우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현대적인 판화다. 민 작가는 "모두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역병을 물리치는 민화 속 호랑이를 소환했다"며 "호랑이가 쓴 왕관은 기쁨과 성과 행복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언정(33)도 목판화와 실크스크린에 '시티 강남' '시티 천안' 등 우리 도시의 풍경을 독특한 화면 구성과 색채로 담았다. 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빛과 그림자, 고즈넉함과 생동감 등 배치되는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다.
김희진(35) 작가는 칼로 깎은 오리지널 목판 자체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기억을 더듬어 풍경과 인물의 이미지를 선으로 재구성한 화면들이다. 한편 젊은 작가 정승원과 홍승혜는 판화가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움의 양극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한 정 작가는 일상의 즐거운 기억을 동화적인 캐릭터에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했다. 반면 국내에서 드물게 수성 목판 작업을 해오고 있는 홍승혜는 추상적인 이미지에 수채화적인 표현이 겹쳐진 작품을 다수 내놨다.
이계선 통인화랑 대표는 "판화는 오랜 시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예술이며 "이라며 "이번 전시는 그 매력에 빠져 모인 작가들이 1년간 기다리며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7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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