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입양'이 아니다

주수원 2021. 1. 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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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과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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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원 기자]

정인이 사망 사건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정인이는 한 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된 이후, 장기간 심하게 학대당해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렀다.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손상'이었으며, 부검 결과 췌장 절단 및 후두부와 쇄골, 대퇴골 등이 골절이 드러났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와 같은 신체 훼손이 압사나 교통사고와 같은, 급격하고 강력한 외부 충격으로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짚었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국민들의 아픔과 분노로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입양아동은 국내(387명), 국외(317명)으로 총 704명이다. 2006년 이전까지는 국외입양이 전체 69.8%를 차지했으나 그 이후 국내입양이 국외입양을 상회하는 추세가 지속되었다. 정부에서는 비용·입양아동 양육수당 지원 실시('07.1),  입양의 날(5. 11) 행사 및 입양주간 행사 실시 등을 하며 입양에 대한 인식개선과 지원 정책을 펼쳐갔다고 한다.

또한 이번 정부에서도 2019년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며 보호대상아동의 보호 결정·관리·원가정 복귀 등 전 과정을 지자체 책임 하에 시행할 수 있도록 공적 보호 체계를 개편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 입양에 대한 인식개선과 공적 보호 체계는 여러모로 부족한 게 현실이다. 

나로서도 이번 기회에 입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인식 부족과 내 자신의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과 두려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읽었었던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2011) 이야기가 생각났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잡스의 이력은 이렇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6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또한,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다."

이런 위대한 기업인 잡스는 또한 유명한 입양아기도 하다. 그는 입양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양부모에 대해서 "그분들은 1000퍼센트 제 부모님입니다"라고 하며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비쳤다. 하지만 친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이지요. 무정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라고 말했다.

뒷 얘기를 모르고 들으면 그래도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에 대해 너무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잡스가 자라왔던 과정을 알고나면 그가 한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잡스의 생모 조앤 시블은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같은 대학원의 조교 잔달리와 사귀게 되고, 곧 임신을 한다. 하지만 시블의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의 잔달리와 결혼하면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반대했다. 결국, 그녀는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당시 위독한 상태였고 입양 절차가 끝난 몇 주 후에 사망했고, 이후 시블과 잔달리는 결혼했다.

미혼모 대학원생이었던 그의 생모는 고학력에 부유한 가정에 입양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느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변호사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딸을 원한다"며 입양기관에서는 대기자 명단에 있던 부부에게 한밤 중에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양부모는 흔쾌히 "물론이죠"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들이 잡스의 양아버지 폴 라인홀트 잡스와 클래라 헤고피언 부부이다.

그런데 생모의 바람과 달리 잡스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 중퇴 후 기계공으로 일하고있었고 양어머니 역시 대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생모는 이들이 과연 잡스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미심쩍어 한사코 입양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부모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스를 대학까지 보내겠다고 계속 얘기하여 몇 달 후 생모는 고집을 꺽고 이들 부부에게 잡스를 입양 보냈다. 

잡스에게는 최고의 양육자였던 양부모

양부모는 잡스가 어릴 적에 입양 사실을 밝히면서 잡스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해주고 넘치는 사랑을 줬다. 기계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 잡스를 위해 해체하여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물건을 주었다.

잡스의 미래를 위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엔지니어링 분야 관계자가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로 이사갔다. 그로 인해 이 곳 고등학교에서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차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고 HP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어 엔지니어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과 네트워크는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애플사를 창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잡스는 생모의 바람대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잡스가 선택한 대학은 미국에서도 학비가 비싼 곳 중 하나였다. 양부모는 생모와의 약속을 지키고 잡스의 장래를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평생 모아둔 전 재산을 잡스의 등록금으로 내어 주었다. 그러나 잡스는 6개월만에 중퇴하고 청강을 하다가 1년 반 후에는 아예 대학을 떠났다. 그 이유에 대해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노동자 계층이었던 부모님이 애써  모아둔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이 저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대학이 그것을 찾아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양부모님이 평생 모으신 재산을 쏟아붓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대학원까지 다녔던 생부모는 고학력에 부자인 부부가 잡스를 잘 키워줄거라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가난한 양부모가 잡스에게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부모였다. 정인이 학대 사건도 친부모, 양부모의 문제라기 보다 결국 "부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니 부모보다 양육자의 문제로 정정한다. 미혼모, 조손가정, 성소자 커플 등 다양한 양육자가 있으니. 이들이 얼마나 키우는 아이에게 사랑과 지지를 해줄 수 있느냐가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내게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잡스 양부모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7살 때 친부모가 잡스를 원하지 않아서 버렸다는 옆집 아이의 놀림을 듣고 울면서 집에 뛰어 들어간 잡스에게 양부모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잡스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라고 얘기했다. 천천히 반복해서, 단어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줘가며.

한 때는 자신이 창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고 다들 실패할거라고 예측했던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인류의 생활 패턴을 바꿔낼 수 있었던 건 어렸을 적부터 들었던 이 말 덕분이지 않았을까. 양부모가 잡스에게 자신을 특별히 선택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에, 그러니 특별한 나는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주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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