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커튼콜, "코로나19 시대 다시 '밈'이 된 화가 에드워드 호퍼"

데스크 2021. 1. 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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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에드워드호퍼 Edward Hopper, 1942년, 캔버스에 유채, 84.1 x 152.4cm,ⓒ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20세기 미국 미술로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작이다. 미술사상 복제와 패러디가 가장 많은 그림 증 하나로 손꼽히는데 일례로 우리에게 익숙한 공효진과 공유가 등장했던 SSG 광고는,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장면 구성처럼 완벽히 일치시키는 것이 아닌 호퍼의 다수의 작품을 혼합하여 오마주한 광고였다.


호퍼의 그림에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립과 단절, 슬픔과 상실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는 호퍼 그림에 관한 가장 흔한 해석들이기에 코로나19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에 들어간 현재를 마치 미리보기라도 한 듯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몰입과 공감의 깊이는 상당하다.


호퍼의 그림들은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락다운을 진행하며 수만 건이 리트윗 되었고, 그 유명세는 더해져 지금의 코로나시대에 다시 ‘밈’이 되었다. 거리두기를 겪으며 바라 보는 호퍼의 그림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을 투영시켜 공감을 호소케 하는 그림이 된 것이다.


호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카페는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다. 도심 곳곳은 물론 주택가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카페는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장소로 어김없이 주목받고 있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휴식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장소가 아닌 현대인의 새로운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퍼의 그림 속 카페가 인간의 존재성을 되돌아보는 공간으로서의 그 의미가 큰 이유이며. 공간은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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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도 카페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많은데 , 빈센트반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밤의 카페’ 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대표작이다. 두 그림은 시대는 물론 색채와 구도, 표현 방식 등에서도 유사점을 꼽긴 힘들지만, 늦은 밤 카페를 포착한 시선은 사뭇 흥미롭게 비교해볼 만하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시간적 배경이 드러난다. 밤은 누군가에게 사유의 시간, 안식이 시간, 생산의 시간, 창작의 시간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좌절의 시간, 인고의 시간, 불면의 시간일 수도 있다


반고흐의 ‘밤의 카페’가 뉴욕에서 전시된 이후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호퍼가 반고흐 에게서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두 작품은 서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하지만, 반고흐의 그림이 호퍼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호퍼가 여러 작품에서 선보여 온 연극적 구성은 누아르 영화나 오페라에 영감을 주었다 하겠다. 그의 그림은 익명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연극적 구성이 특징으로 익히 꼽히고 있었다.. 최근에는 비대면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다양한 패러디의 대상으로 각색되어 한층 폭넓은 의미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호퍼는 뉴욕에서 출생한 미국 화가로 뉴욕예술학교에서 로버트 헨리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당시 가난했던 호퍼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수입을 얻기 위해 상업화가로서 광고미술이나 잡지의 일러스트 삽화 등을 제작하며 생계를 꾸리며. 오랜 기간을 무명화가로 지냈다. 작품을 팔지 못하다가 미술을 함께 공부했던 조세핀 버스틸 나비슨과 결혼 후 화가로서의 삶에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1924년에 뉴욕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들이 모두 완판 되면서 비로소 전업화가로 전향 하였고, 이윽고 1933년에는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며 그의 명성은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그의 그림을 쇼설 리얼리즘 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브레히트의 이화효과’ 와 같은 대상과의 거리를 만들어 낯설게 보이게 하는 효과들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낯선 거리감은 인간소외와 도시인의 고독을 서사극적으로 표현 시킨 것이다. 호퍼는 주의 깊게 구성된 불편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혹한 빛과 엄격한 선을 이용하여 ‘거리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마치 지금의 불편한 ‘사회적 거리두기’ 환경의 엄격함과 ‘가혹한 것’ 임을 서사하듯 말이다.


야간의 카페, 극장 휴게실, 호텔 방이나 주유소, 아파트, 호퍼의 작품 속에는 20세기 일반적인 도회의 코드들이 등장한다. 그 풍경은 싱거우리만치 단조로우며, 깊은 상실감과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동반한다. 텅 빈 거리가 그렇고, 불 꺼진 상점들이 그렇고, 식당의 비어있는 의자가 그렇고, 깊게 눌러 쓴 남자의 중절모가 그렇다.


호퍼는 원래 일러스트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사실주의 미술에서도 단순 세련의 일러스트 DNA가 유지되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밤은 오로지 전체로서 살아있다. 밤은 층과 표면, 거리가 없는 순수한 깊이이다” (지각의 현상화)라고 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밤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어둠의 깊이로 끌어들인 것처럼 건물의 층과 표면, 거리가 하나의 평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일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심리적 요소들의 장치들이 새로운 의미의 미술을 말하고자 한다. 붉은 벽돌 건물이 배경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입체적이기 보다는 평면적으로 그려져 오히려 차갑고 고요한 분위기가 강조되고 있다.


2021년 1월 20일, 오늘은 대한민국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다. 크고 작은 수많은 집단 발생으로 인한 단계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듭해오며 홀로 단절되고 고립된 시공간도 제법 익숙하다. 대인관계는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교육은 학교가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찾고 있으며, 일하는 공간도 직장에서 집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우리는 혼돈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질서를 찾게 되었고, 분야별로 저마다 티핑 포인트를 맞이하며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표준, 즉 ‘뉴 노멀’시대와 맞서게 되었다.


필자가 1년만에 커튼콜 한 호퍼의 그림은 이제 더 이상 고립과 단절, 슬픔의 그림이 아닌, 따로 또 같이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선택한 바이러스 시대를 살아가는 강건한 현대인들의 모습들이 되었다. 이제 돌아갈 곳 없는 코로나19가 앞당겨준 미래를 앞서 살게 된 우리는 이미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에게 펼쳐질 지금보다 더 새로운 세상에서의 '밈'(meme /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컨텐츠)소식이 벌써 기다려진다.


BONUS NOTE:

REBOOT 코로나가 가져온 거대한 ‘티핑 포인트’ 中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비접촉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관련 산업의 투자와 성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었을 변화들이 코로나로 인해 티핑 포인트를 맞고 있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란 어떤 현상이 아주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균형이 깨지면서 예기치 못한 폭발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말한다.


‘티핑 포인트’의 저자 말콤 글랜드웰은 이를 ‘사회적 전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회적 전염에는 발병하는 한계점, 즉 티핑 포인트가 있다. 티핑 포인트는 마케팅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 트렌드가 될 때까지, ,다시말해 티핑 포인트가 올 때까지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 마케터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코로나관련 산업이 티핑 포인트를 맞았다, ‘전 지구적인 마케터’역할을 한 셈이다.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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