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작전판] 김민우, 수원 주장의 자격

한준 기자 2021. 1. 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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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삼성 전임 주장 염기훈(왼쪽)과  신임 주장 김민우(오른쪽). 수원삼성 제공.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주장은 그저 완장만 차고 선공을 결정하라고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수원 삼성의 2021시즌은 공식 주장으로 선임된 김민우(30)의 활약에 좌우될 수 있다. 


주장은 그라운드 위의 감독이다. 자신의 플레이도 무리 없이 수행하면서 팀 전체의 플레이를 통솔해야 한다. 팀의 에이스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혹은 본질적 역할과 다른 이유로 완장을 차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는 그라운드 위의 진짜 리더가 따로 있다. 그런 선수들을 두고 '정신적 지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기 위해 팀에 필요한 것은 일군의 좋은 선수들 뿐 아니라 선수들을 하나로 뭉쳐 팀으로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리더다. 축구 게임 능력치처럼 '객관적 전력'이라는 지표를 뛰어 넘는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독의 전술, 그리고 팀원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화학 작용이다. 이 화학 작용의 중심에 그라운드 위의 감독, 주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원삼성은 2021시즌 주장으로 김민우(30)를 임명했다. 염기훈(37)이 매 경기 선발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한 선임이다.


◼︎ 사간도스의 주장에서 수원의 주장으로


김민우는 2017년에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 J리그의 사간도스에서 이미 '리빙 레전드'로 대우 받던 김민우가 수원 입단을 택한 이유는 병역 의무 때문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며 군 복무를 하기 위해선 상무로 임대 이적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K리그에 적을 둬야 했다.


김민우가 수원에 입단했을 때, 대부분의 이들이 상무 생활을 마치면 다시 사간도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간도스는 김민우가 달았던 등번호 10번을 비워두기도 했다. 김민우가 2010년 사간도스에 입단했을 때 팀은 2부리그에 있었다. 1부리그 승격 및 상위권 진입을 이끄는 과정에 김민우의 왼발은 가장 강렬한 불꽃이었다.


창조적이며 치명적이면서도 헌신적인 김민우는 2016시즌 사간도스의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J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많았지만, 주장을 맡은 인물은 홍명보(가시와), 정우영(빗셀고베)과 김민우 등 세 명 뿐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한국 팬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이 그는 J리그를 대표 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 받고 있었다.


사간 도스에서 주장 완장을 찾고 10번을 달았던 김민우. 사간 도스 제공.

수원 입단 이후 김민우는 2017시즌 K리그 30경기 6골 5도움을 기록했다. 3-4-3 포메이션을 쓴 수원에서 그의 최적의 포지션이라고 보기 어려운 왼쪽 윙백으로 주로 뛰면서 남긴 기록이다. 사간도스에서 주로 2선 공격수로 뛰던 김민우는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의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포백에서 풀백을 맡은 김민우는 자신이 자신 재능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했다.


◼︎ 김민우가 사간 도스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


김민우와 수원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했다. 2018시즌 곧바로 상주 상무로 입대해 한 시즌 반을 보낸 뒤 2019시즌 후반기에 수원으로 돌아온 김민우는 복귀전에 곧바로 득점포를 가동했고, 수원의 FA컵 우승에 일조하는 결승점 득점을 기록하며 골을 기대에 부응했다. 매년 구단 재정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 김민우가 제대 후 보여준 활약은 '톱 클래스'였다. 전술적 무게 중심이 크게 쏠렸다. 김민우가 떠날 경우 수원이 그에 준하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전무한 때였다.


당시 김민우는 수원 삼성과 계약을 1년 연장했는데, 국내 팀 이적에 대비한 조치였다. 실제로 자금력이 좋은 몇몇 팀이 김민우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해외 구단 이적 시에는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은 김민우가 눈물을 흘리며 사간도스를 떠날 때 "전역 후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었다. 사간 도스 외에도 김민우를 원하는 아시아 팀들이 있었다.


사간 도스는 구단의 재정난 속에도 2020시즌 김민우를 복귀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다. 수원도 김민우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염기훈이 황혼기를 맞았고, 홍철의 이적 가능성이 커지던 시기에 김민우마저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런 수원 삼성의 정성과 더불어 짧은 기간 강렬한 시간을 보낸 수원에 김민우도 애정을 보였다.


"어릴 때 고종수 선수를 좋아했다. 수원을 굉장히 좋아해서 꼭 한번 뛰어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수원삼성 경기를 봤다. 성남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성남과 경기를 보러 가게 됐었다. 그때 고종수 선수가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걸 본 기억이 있다." (2017년 1월 수원 입단 당시 인터뷰에서)


수원삼성의 주장 완장을 차고 2020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누빈 김민우.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김민우는 한국 체류를 지속하고자 하는 개인 상황과 맞물려 고심 끝에 2020시즌 수원과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불완전하게 진행된 2020시즌 김민우는 리그 27경기에서 4골 3도움을 기록했다. 이임생 감독, 주승진 감독 대행, 박건하 감독 체제 등을 거치는 사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부침도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도 김민우는 염기훈이 빠진 AFC 챔피언스리그 카타르 개최 일정에 주장 완장을 팔고 대회 4강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수원은 2008년 말부터 주장을 선수단 투표를 통한 '직선제'로 뽑아왔다. 한동안 수원의 주장이 매년 바뀌어온 이유다. 직선제로 뽑힌 초대 주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 송종국이었다. 그 뒤로 매년 선수단 투표로 결정되어온 수원의 주장직은 염기훈이 압도적 존재감을 보인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자연스래 선수단 투표로 주장을 정하던 전통도 사라졌다. 김은선이 주장직을 맡았다가 개인적 문제로 퇴단하는 사건이 벌어져 다시 염기훈이 완장을 찼다.


김민우는 현재 수원에서 포스트 염기훈 시대의 대체 불가 에이스다. 예전처럼 선수단 투표가 진행되었더라도 당선되었을 것이다. 수원의 '10번'이기도 한 김민우는 실력과 영향력, 리더십을 모두 겸비한 자타공인 리더다.


2018/19시즌 리보르노 소속으로 세리에B 경기에 출전한 두미트루는 수원 삼성 입단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김민우+새로운 외국인 선수, 2021시즌 수원이 거는 기대


2021시즌 수원의 10번이자 주장으로 뛰게 될 김민우는 K리그 입성 후 최고의 시즌을 꿈꾸고 있다. 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느 때보다 안정된 시즌이기 때문이다.


수원 삼성이 2021시즌 새로 구성한 외국인 공격수 우로시 제리치(28)와 니콜라오 두미트루(29)와 시너지 효과를 이룬다면 김민우는 사간도스 시절 보여준 창조적 2선 공격수로 자신의 재능을 발산할 수 있다.


높이와 결정력을 갖춘 제리치, 현란한 발재간과 날카로운 오른발을 갖춘 이탈리아 청소년 대표 츨신 윙어 두미트루는 김민우와 다른 강점을 가진 선수들이다. 제리치가 전방에서 상대 센터백을 묶어주고, 두미트루가 개인 능력으로 하프스페이스를 휘어저주면 김민우가 왼발을 통해 골로 가는 길을 열기 훨씬 수월해진다. 득점이든 도움이든 이전 시즌보다 늘어간 가능성은 충분하다.


감독 입지가 불안했던 이전 시즌과 달리 박건하 감독 체제에서 자신감과 안정성을 되찾은 구단 환경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소다. 수원은 어느새 '언더독'의 위치로 내려섰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그리고 요코하마전에 김민우가 보여준 한 방은 김민우과 수원이 다시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수원의 오랜 고민이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한석종이 자리를 잡았고, 이기제가 제대하면서 김민우가 2선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점은 구조적으로 수원이 2020시즌에 비해 리그에서 더 밀도있는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부주장으로 신뢰를 확인 받은 민상기와 캐나다 수비수 헨리까지 기대에 부응해준다면 두 시즌 연속 8위에 그치며 파이널 라운드 하위 그룹에 속한 부진을 끝낼 수도 있다.


윙백보다 윙어, 10번의 자리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더 편안한 김민우가 두 선수를 지원하는 국산 크랙으로 기능한다면 빅버드에 염기훈과 권창훈, 조나탄이 빛나던 몇 년 전의 신명 나는 축구가 재현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 가세할 제리치와 두미트루가 영입을 결정하도록 이끈 과거의 능력을 보여줘야 가능한 일이다. 2021시즌 K리그에는 이와 같은 기대를 품고 있는 팀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김민우가 개인 능력을 발산하는 것만큼 주장의 자격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가장 좋은 선례인 염기훈이 아직 팀 내에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김민우와 수원의 2021시즌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사진= 수원삼성, 사간도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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