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T 시대.. 北·美 '단계적 비핵화' 수싸움 시작

김영선,손재호 2021. 1. 2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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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남북미 어디로] <상> 북미관계, 비핵화


곧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국 신 행정부의 북·미 관계와 비핵화 협상 전략을 보면 최우선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지우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정상들의 담판으로 큰 원칙을 천명하고 이후 구체적 실행 단계 협상으로 나아가는 톱다운 방식은 이미 용도폐기됐다. 대신 일정 부분의 협상 권한을 위임받은 당국자들이 실무 레벨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보텀업 방식이 될 전망이다. 비핵화 협상이 이뤄진다면 단계마다 검증을 거치는 문제를 놓고 양측의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비핵화 협상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지우기, 즉 ‘애니싱 벗 트럼프(Anyting But Trump·ABT)’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모두 폐기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편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 역시 대북 정책에서 이를 원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최소한 4년간 집권할 바이든 행정부와 이에 대응하는 북한으로선 비핵화 조치와 이에 대한 상응 조치가 맞아떨어지도록 상호 간의 간극을 좁히는 게 비핵화 협상의 관건이다. 우선 북한은 ‘핵 강국’임을 주장하며 협상에 나서겠다는 태세다. 반면 미국은 ‘핵 동결’을 첫 단추로 제시할 전망이다.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어느 정도 진전이 된다 해도 비핵화의 최종 상태와 이행 단계를 구체적으로 합의하기는 쉽지 않다. 어찌됐든 북·미 간에는 현재로선 비핵화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대화에서 진전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지난한 수싸움이 열린 형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대원칙을 정상 간에 세운 뒤 이행 방안 수립 과제를 실무진에게 내렸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 단계에서부터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상응 조치를 주고받으며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방식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최근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이 같은 ‘주고받기’ 원칙을 제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5~7일 이어진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제재 완화와 같은 미국의 확실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바이든 시대 북·미 관계의 첫 시험대는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이 될 수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19일 “미국이 ‘연합훈련을 축소 내지 유예하는 대신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온전한 훈련으로 회복하겠다’는 식의 조건을 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원칙 대 원칙’이라는 상호주의에 따라 여기서 양측이 첫 주고받기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필요하다면 남북이 군사공동위를 통해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비핵화 대화 단계로 들어간다면 상황은 어떻게 진행될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비해 자신들이 핵보유국이라는 전략적 지위를 오히려 높일 것으로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자신들의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려 할 것”이라며 “단순히 핵보유국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향후 비핵화 협상을 핵 군축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의도까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를 끌어올리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인도태평양조정관 자리를 신설했는데, 여기에 ‘대북 조기 메시지’를 주장했던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임명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놓고 “바이든 행정부도 북핵 문제의 시급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이란 핵 합의에 관여했던 인물들인 만큼 북핵 논의에도 이 모델이 참고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 합의는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인 ‘엔드스테이트’를 지정하고 여기까지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분절해놓은 포괄적 합의다.

미국은 이란 핵 합의를 토대로 북한에 핵시설 ‘동결’을 첫 단계로 제시할 것으로 예측된다. 동결을 검증하려면 핵시설 ‘신고’가 전제돼야 하는데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시작부터 양측의 지루한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양측이 대화를 탐색하는 시기가 된다 해도 과도한 낙관론은 지양해야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임을 앞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제8회 한·미동맹포럼 강연에서 “북한과 외교가 성공적이기를 희망하지만 희망만이 행동 방침이 될 수는 없다”면서 “김정은이 8차 당대회에서 한 위협과 불의의 상황에 대비해 북한의 핵전쟁 억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하겠다고 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미가 ‘핵 동결’에 합의한다 해도 이것이 비핵화의 최종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두고 그 과정에서 현실을 감안해 동결을 중간목표로 설정하는 안을 제시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북한이 아전인수 격으로 동결을 최종 목표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계속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쉽지 않지만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이란 핵 합의 당시 유럽이 이란과 미국 사이의 버퍼존(완충지대) 역할을 했듯 북한에 레버리지를 갖고 있는 중국이 협상에 적극 나서야 진전을 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선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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