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바다

유성운 2021. 1. 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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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문화부 기자

“영국에 왜 위대한 음악가가 없는 줄 아나?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야.”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괴짜 교수 요제프 마쉬칸은 미국에서 온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과 러시아는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했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는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자신한다. 대학로에서 상연 중인 연극 ‘올드 위키드 송’의 일부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실패로 영국은 정복할 수 없는 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근세 이후 만들어진 역사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의 동네북이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를 시작으로 6세기엔 앵글로·색슨족, 8세기엔 바이킹, 11세기엔 데인족(덴마크)과 노르만족에게 차례로 나라를 내줬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배경은 데인족이 영국을 다스리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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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패배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것은 엘리자베스 1세 때다. 여왕이 후원하던 해적들은 신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빨아들이던 스페인 상선을 약탈해 국가에 바쳤다. 나중엔 스페인 함대도 격파했다. 크롬웰은 항해조례를 제정해 네덜란드의 무역 독점을 견제했다. 17~18세기 양국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제해권을 놓고 네 차례 전쟁을 벌였다. 승자가 된 영국은 해양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다. 한때 타민족이 쳐들어올까 전전긍긍하던 바다는 영국의 젖줄이 됐다.

한반도와 바다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단군 이래 가장 부강한 대한민국은 국제교역으로 만들어졌다. 과거 ‘왜구’와 ‘양이’들이 출몰할까 두려워했던 그 바다로 눈을 돌리면서 잡은 기회였다.

유성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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