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와 한국 경제 위기 부른 삼성 사령탑 구속

2021. 1. 2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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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력 언론도 리더십 공백 우려
정부, 교각살우 위기 해법 고민해야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4차 산업혁명의 생존 경쟁 와중에 이 부회장이 다시 수감된 것은 삼성의 인공지능·자율주행차 같은 첨단 기술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서다. 그간 한국의 대기업을 재벌이라고 칭하면서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비판해 온 FT가 전문가 의견을 빌려 이런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 부회장의 구속은 파장이 크다는 의미다.

물론 사법부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감옥에 가 있고, 심각한 외교적 논란에도 일제 강제징용 근로자와 위안부에 대한 손배해상 판결이 나온 것은 법의 잣대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을 먹잇감으로 국정을 농단하는 불행한 사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현실은 암울하다. 삼성 개별 기업을 넘어 국익 손실도 막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삼성은 지금 한순간도 주춤할 여유가 없는 비상상황이다. 총성 없는 4차 산업혁명의 승부처로 떠오른 반도체부터 인공지능·자율주행차 부품까지 1등만 살아남는 불꽃 경쟁의 정점에서 한순간도 빈틈이 있어선 안 될 리더십에 공백이 생겼다. 대기업은 조직력이 탄탄해 별문제가 없다고 보는 건 냉엄한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반도체는 과감한 투자 결정이 없으면 불과 수개월 만에 선두를 빼앗기는 치킨게임 산업이다. 한국이 1990년대 중반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의 선두권에 올라선 비결이 바로 과감한 투자였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반도체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쉼 없이 글로벌 생산 현장을 돌아다닌다. 첨단 생산장비를 조달하고 경쟁우위를 위한 인수합병(M&A)을 위해서다. 이 부회장이 이번 주에도 국내 사업장을 돌아보고 이달 말 해외출장에 나서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정한 비즈니스 현실에서 경쟁 기업들은 쾌재를 부르게 됐다. 이 부회장이 재수감되던 어제 바로 최대 라이벌인 대만의 TSMC는 사상 최대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호시탐탐 반도체 패권 탈환을 노리는 일본, 자체 반도체 확보에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중국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코로나19 여파로 디지털 경제가 급가속하는 중에 삼성의 경영 공백은 경쟁국과 경쟁기업에 천운(天運)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옥중 경영이 불가피해졌지만, 원활할 리 없다. 삼성은 10조원 규모의 상속세 부담과도 맞물려 대규모 사업구조 재편을 본격화하는 와중이다. 이 결정적 순간에 리더십 공백은 삼성의 기술 경쟁은 물론이고 자칫 한국 경제의 핵심 기둥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게 됐다. 정부와 여권은 교각살우의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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