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홈플러스..온라인시대 부동산 집착 전략적 오판했나
오프라인 쇼핑 침체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임일순 대표마저 사임하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2015년 홈플러스를 7조원에 인수한 MBK파트너스도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통 흐름이 ‘입지(오프라인)’에서 ‘물류(온라인)’로 넘어가는 시대에 지나치게 부동산 사업에만 몰두한 MBK파트너스의 전략적 오판이 도마 위에 오른다.
▷스페셜·올라인·리츠…‘백약이 무효’
임일순 전 대표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2015년 재무부문장(부사장)으로 영입됐다. 2017년 경영지원부문장(수석부사장)을 거쳐 같은 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 오너가(家)가 아닌 유통업계 최초의 여성 CEO여서 화제가 됐다. 코스트코, 바이더웨이 등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경력을 자랑하는 임 전 대표가 수렁에 빠진 홈플러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업계 이목이 집중됐다.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 강화, 온라인 쇼핑 활성화 흐름에서 임 전 대표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창고형 할인점과 대형마트의 장점을 결합한 ‘홈플러스 스페셜’, 오프라인 점포 한편에 온라인 쇼핑용 물류센터를 구축한 ‘올라인(All-line)’ 전략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2016년 3090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은 이후 계속 줄어 2019년 1601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2019년 홈플러스 전국 매장을 리츠(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추얼펀드)로 만들어 상장하려던 시도도 기관 투자자 외면으로 결국 무산됐다.
이에 임 전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MBK파트너스가 만류하다 최근 수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어쩌다 이 지경에
▷리츠 상장 무산·온라인 투자 부실
홈플러스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우선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의 전략적 오판이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유통 흐름이 ‘입지’에서 ‘물류’로 넘어가는 시대에 지나치게 부동산 사업에만 몰두했다는 것.
MBK파트너스는 2015년 9월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무려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MBK파트너스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캐나다공무원연금, 테마섹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외부 차입금으로 자본을 조달해 기업을 인수)했고, 이와 관련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상당한 고금리 이자를 지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온라인·모바일 쇼핑으로 소비 채널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홈플러스 운영 수익만으로는 이자 지급도 빠듯했다. 쿠팡, 이마트처럼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 인프라 투자를 단행해야 했지만, 홈플러스는 그럴 재무 여력이 없었다.
결국 MBK파트너스는 시종 부동산 자산 유동화에 집중했다. 홈플러스 매장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1조7000억원 규모 초대형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만들고 상장을 위한 공모에 나섰다. 그러나 수요 예측 결과 공모액은 약 7억달러(약 8000억원)로 조달 계획의 절반 수준에 그쳤고, 결국 리츠 상장은 무산됐다. 전체 공모금액의 84%는 배정된 해외 기관 투자자 참여가 저조했던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중반에는 이미 아마존을 위시한 온라인 쇼핑 성장으로 월마트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해외 투자자들이 획기적인 온라인 쇼핑 강화 전략도 없이 부동산 자산만 내세운 홈플러스에 선뜻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홈플러스는 뒤늦게 온라인·모바일 쇼핑 대응에 나섰다. 전국 140개 오프라인 매장에 온라인 물류센터 기능을 더한 ‘세미다크스토어’ 전략이다. 그러나 대대적인 투자 없이 기존 인프라를 재활용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다.
“홈플러스가 내놓은 ‘올라인 전략’은 점포 내 유휴 공간을 물류센터로 개조하는 식의 ‘기존 점포 재활용’에 불과했다. 물류 자동화, 동선 효율화 등 온라인 쇼핑에 최적화된 인프라 투자 대신, 물류센터 시공에 드는 비용과 기간, 관리 비용 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아마존, 쿠팡, 이마트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지은 것과 대조된다. 자동화 안 된 물류센터는 인건비가 더 드는데, 온라인 상품은 더 저렴하게 팔아야 하니 지속 가능하기 어려운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의 혹평이다.
홈플러스의 투자 부진은 노조에서도 문제 삼는 대목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투자금액은 3000억원 수준에 그쳤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통 시장은 온라인 점유율 싸움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인 수익을 포기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할 강력한 오너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재매각을 통해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모펀드가 주인이니 애초에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측은 그러나 온라인 사업 강화에 줄곧 집중해왔고 성과도 내고 있다고 말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전 점포를 온라인 물류거점으로 전략화했으며, 온라인 수요가 높은 일부 지역에는 오프라인 점포 내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풀필먼트 센터(Fulfilment Center)’를 조성하며 몰려드는 온라인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프라인 대형마트 중심의 사업 모델을 온라인과 융합된 ‘올라인(All-Line) 미래유통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포 자생력 높여 출구 전략 짜야
임일순 전 대표 사임으로 홈플러스는 당장 새 수장을 찾느라 다급해진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현재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역량과 경험을 갖춘 다수 후보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후임 대표가 정해질 때까지는 당분간 사업부문장들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전문가들은 홈플러스가 이제 손실을 최소화하는 출구 전략 마련에 집중할 것을 조언한다. 그간 꾸준히 대두됐던 알짜 점포와 부동산 매각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 그러나 이 경우 기존점에 근무하던 직원의 대량 실직이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점포별 자생력을 높여 유통기업이 인수, 고용 승계를 노리는 것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홈플러스는 이제 각개 전투해야 산다. 개별 점포 역량을 극대화해 점포 자산 매각에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서울은 경쟁점이 많아 어렵지만, 지방 매장들은 상품 구성(MD)을 차별화한 매장이라면 매각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돈키호테처럼 점장에게 성과에 비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지급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3호 (2021.01.20~2021.01.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