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성경 강좌] 생명신학과 생명있는 목회자의 삶

2021. 1.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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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바울의 편지는 많은 것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삶은 복된 것이고 죽음은 저주하고 있습니다.

'살다'라는 동사 (자오 : ζαω )의 미래적인 의미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유기체의 육체의 육체적 생명을 나타내며 모든 생물의 특성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생활의 유익을 해침으로 여기고(빌3:7) 오히려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 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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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 이니라"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사는 것 : 젠 : ζ ν )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바울의 편지는 많은 것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삶은 복된 것이고 죽음은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땅에서 장수하기를 원하며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과 죽음사이에 사이에 있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리라”(롬 1:17~)

(살리다 : 제세타이 : ζησεται )

‘살다’라는 동사 (자오 : ζαω )의 미래적인 의미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유기체의 육체의 육체적 생명을 나타내며 모든 생물의 특성을 가리킵니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살아있다, 활동하다’입니다. 우리는 진실한 바울의 고백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니”
(크리스토스 : χρισιο )

이 말은 고유명사로 ‘기름을 붓다, 바르고 문지르다’라는 동사 (크리오 : χριω )에서 유래되어 원래의 의미가 ‘얼룩진 기름이 칠해진 이’라는 뜻이었는데 발전되어 ‘그리스도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는 구세주로서의 예수에 대한 표현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시대적 왕들이나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기름부음의 의식이 행하여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원자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죽는 것도”
(아포다네인 : ποθαιειν )

이 말은 ‘~로부터’라는 (아포 : πο )와 ‘죽다’라는 (드네스코 : θνησκω )가 결합된 동사이며 본문에서는 ‘죽는 것이란 죽는 행위의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죽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보는 것은 바울이 옥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근원이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는 주와 함께 편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을 소망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은 이 세상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도피하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려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살아서도 항상 주를 위해 고난 받으며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을 전파하면서 그리스도와 행동했지만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유익함이니라”
(케르도스 : κερδο )

이 말은 ‘이익을 얻다. 저축을 하다’라는 (케르다이노 : κερδαινω )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이익, 소득. 유익‘을 뜻하며 더 나아가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까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생활의 유익을 해침으로 여기고(빌3:7) 오히려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 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죄악의 세력과 더불어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죄의 세력과 완전히 단절되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생명신학은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생명 있는 삶이라는 말씀과 함께 계신 주님의 삶을 말합니다.

조성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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