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감위 유지, 취업교육 진행..삼성 '오너 부재' 속 조용한 비상경영

최현주 2021. 1. 1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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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던 국내 반도체 시장에 먹구름이 끼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구속되면서 삼성이 리더십 구심점을 잃어서다.

일단 삼성전자는 일상적인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서울 강남구 서울멀티캠퍼스에서 ‘삼성청년SW아카데미’ 5기 입학식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정보기술(IT) 생태계를 확대하고 청년 취업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재판부의 주문으로 설립됐으나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받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상고 여부에 대해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의 이인재 변호사는 “의견을 최종 조율중이며 조만간 (재상고 여부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해 첫 업무일인 지난 4일 파운드리 설비 반입식이 열린 삼성전자 평택2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삼성전자]

하지만 사내에선 낙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LG나 SK는 대규모 M&A나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었지만, 삼성은 이 부회장이 구속 직전인 2016년 하만을 인수한 후 사법 리스크에 대한 부담으로 M&A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너의 부재로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국내 경제‧산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장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같은 주요한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고, 글로벌 인재 영입도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됐을 때 삼성그룹은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각각 운영됐다. 대규모 투자나 M&A는 진행되지 않았고 주요 임원 인사도 연기됐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당장 경영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전문경영인은 5~10년 뒤에야 성과가 나오는 연구‧개발(R&D) 같은 미래 먹거리 확보에 적극적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사실상 멈춰
특히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국내 산업이 휘청거리고 있지만, 반도체는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 비대면 인프라 구축으로 노트북·스마트폰·서버 등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한 제품 수요가 늘어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D램 42%, 낸드플래시 34%의 점유율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스템 반도체에선 대만 TSMC, 미국 퀄컴, 일본 소니 등에 밀려 입지가 열세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았다.

특히 대만 TSMC가 주도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스템 반도체에만 1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이 부회장이 지난 4일 찾은 곳도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2공장이었다.

전문가들은 초미세공정 기술력이 핵심인 파운드리 시장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전자가 경쟁 업체와의 속도 경쟁에서 밀릴 것을 우려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5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5세대(5G) 스마트폰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도 이 둘뿐이다.

대만 TSMC 로고. [연합뉴스]



“수십조 반도체 투자 어려워질 것” 예측도
최근 TSMC는 올해 250억~280억 달러(약 27조~31조원)의 설비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이자 역대 최대다. 설비투자 대부분이 5nm 이하 초미세화 공정에 도입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는 총수 구속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장비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생산라인은 수십조의 천문학적 금액이 들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이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TSMC가 더 멀리 도약하려는 이 시기에 기술혁신 속도가 늦춰진다면 격차를 좁히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옥중 경영’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상속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경영권 승계 재판도 준비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하루 면회시간이 10분인데 경영진이 머리를 맞대고 오랜 검토와 논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할 일을 보고하고 결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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