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둣집, 배달대행.. 다시 '피에로'가 될 수 있을까요?

홍승주 2021. 1. 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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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벤트업 종사하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아 만둣집 연 하우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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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 기자]

 코로나19 전, 피에로 분장을 한 하우빈씨
ⓒ 본인제공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가게나 행사를 홍보하는 '거리의 피에로'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쓸고 간 후, 우리는 모일 수도 없게 되었고, 거리의 피에로를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지난 10일, 10년 차 베테랑 피에로이자 만둣가게 초보 사장이기도 한 하우빈(27)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피에로, 만두를 팔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 행사가 사라졌다.

"일 년 동안 행사 수입으로 백만 원도 벌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무너져 폐인이 되었죠."

'금방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틴 것이 한두 달. 계속 수입이 없자 가족들과 마찰이 생겼다. 가족들은 그에게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라고 얘기했다. 하우빈씨는 본인 스스로 '나는 행사 일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인가?'라며 자책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되며 이벤트 업계는 코로나19의 타격을 정면으로 맞았다. 하우빈씨는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섯 중 셋이 문을 닫았다'고 표현했다. 아직 버티는 사람들도 직원들은 전부 그만두고 혼자 버티고 있다. 이벤트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행사가 들어와야 일을 나간다. 따라서 행사가 없으면 수입이 없다.

"SNS만 열면 이벤트 업계 사람들이 이벤트 관련 장비를 파는 글들이 올라와요. 존경하던 분들이고 얼마나 열심히 일해 왔는지 아는데, 그런 분들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만두
ⓒ 본인제공
 
하우빈씨는 마냥 놀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작년 8월, 이벤트 업계 선배와 만두 가게를 차렸다. 그는 '행사만 하던 사람'이었지만 두 손 두 발 다 들 수는 없었다. 함께 가게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행사가 생기면 서로 일정을 조율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본래 자유로운 피에로였던 하우빈씨에게 고정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가게 생활은 어려웠다. 기독교인이기도 한 그는, 본인의 업을 '문화사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게 선교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일하는 내내 이벤트 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지역 동사무소 쪽과 얘기를 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만두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 동사무소에서 쌀을 지원받은 경험이 있었어요. 제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도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후로 만둣가게를 하는 게 즐거워졌어요."

만둣가게는 초반에는 잘 됐다. 주위에 카페와 비싼 음식점만 있고 분식점이 없는 곳을 골랐다. 하지만 9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와 높은 월세, 코로나19로 받은 타격은 정부 지원금으로는 메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자영업자로 변신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매출은 떨어지고 하우빈씨는 배달대행을 하게 되었다.

배달대행을 하면서도 그의 만두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만둣가게는 '학교'가 콘셉트다. 벽에는 교훈이 적혀있는 액자가 걸려있고 우빈 씨와 선배는 교련복을 입고 일을 한다. 손님들은 웃으면서 만두를 사 간다. 그들은 만둣가게로 웃음과 나눔이라는 영향력을 펼치는 중이다.

그는 "만두 맛에는 자신 있다"라고 단언한다. 쭈꾸미 만두는 2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고, 육즙 가득 왕 교자와 모듬 만두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하우빈씨는 취업난과 생계난에 허덕이는 우리 시대 청년 중에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보다는 긍정을 택했다.

우빈씨의 꿈 
  
 분장을 하고있는 하우빈씨
ⓒ 본인제공
 
우빈씨의 본래 꿈은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사기를 당해 사업이 크게 망했다. 컨테이너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우빈씨는 "라면을 끓여서 먹고, 국물은 남겨놓고, 그걸로 다음날 밥 말아서 먹고 그런 식으로 살았어요"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그때부터 본인의 생계는 자신이 알아서 해야 했다. 전단지 돌리기, 고깃집 서빙,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고 어린 나이라 잘리기도 했다. 일만 하느라 사실상 꿈을 접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이벤트 아르바이트'가 재밌다고 추천을 해주었다.

단순 아르바이트로 시작을 했지만 한 강의를 듣게 되고 생각이 바뀌었다. "의사가 되고 싶으면 의사가 되고 싶다 보다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라는 요지의 강의였다. 고등학생 우빈씨는 그 '어떤'에 꽂혔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당시 제가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쓸 수 있던 도구가 '웃음'이었고요. 그래서 개그맨을 꿈꿨고요. '웃음을 주는' 피에로가 되기로 했습니다. 행사를 나갔을 때 사람들에게 농담하면 그들이 웃는 게 정말 행복했습니다."

긍정은 좌절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석고상 분장을 하고 마임(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표현하는 연기)을 하던 도중 지나가는 사람에게 맞은 적이 있다. 풍선 아트를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일단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그의 사정상 배우기가 어려웠다. 또한 스마트폰 지도가 잘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행사장 찾아다니는 게 힘들었다.

"행사장 근처 지하철역까지는 어떻게든 간 다음, 부동산에 들어가서 주소를 보여주며 어디냐고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우빈씨는 행사를 할 때 가장 행복했고, 대학도 관련된 레크레이션과로 진학했다. 대학 생활 중 피에로 공연하는 사람을 만난 후 피에로를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다.

그는 공연과 이벤트 회사 팀장을 함께 해 성수기인 달에 600만 원~700만 원을 벌 때도 있었다. 개인 사정상 인력 관리는 그만두었다. 우빈 씨는 돈을 많이 벌던 때를 추억했다.

"그때는 독기가 있었어요. 가족하고 싸우고 집을 나가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죠. 화장실도 안 딸린 회사 사무실에서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올바르게 살진 못 했던 것 같아요. 많이 번다 한들 어릴 때 큰돈을 만지다 보니 평생 그렇게 벌 줄 알고 술 먹는 데 다 썼습니다. 그때 돈을 모았으면 지금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텐데요. (하하)"

"돈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공연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기획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얘기를 나눴다. 거리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 풍선을 만들어주며 거리 전도를 하기도 했다. 하우빈씨는 말했다. 

"돈 잘 벌던 시절이 그립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던 게 무엇보다 그립네요. 그 시간들이 가장 즐거웠어요."

코로나19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자 우빈씨는 "나도 잘하고 있진 않다. 하루하루 아등바등 버티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저는 코로나로 무너졌습니다. 코로나가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며 지속되니 제 탓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코로나가 유행한 게 제 탓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 탓도 아니고요.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함을 많이 극복했습니다.

또한 저는 공연을 하는 사람인데 코로나 탓, 제 탓을 하며 1년 동안 공연 연습조차 하지 않았어요. 공연은 못하지만 연습은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내 능력으로 코로나를 없앨 수 없으니 지금 이 시간을 '나를 정비하는 시간'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혼자 자기 탓하며 괴로워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는 분들도 기사로 접하고 있는데 그런 선택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힘들고 우울하지만, 우울함의 원인인 코로나가 '내 탓으로 발생한 건 아니다' 생각을 하시며 파이팅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그의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말을 글로 정리하면서 나는 울컥했다. '만만치 않은 삶인데'. 그렇게 내 삶도 만만치 않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원금일까? 양질의 일자리? 아니면 용기? 우리가 부딪힌 현실에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을 순 없을까. 

그래도 만두를 빚어 기증하는 하우빈씨의 모습에서, 그 어디에도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찾은 것 같았다. 코로나19가 좀 가라앉으면 이 가능성이 가득한 만둣집을 한번 들러봐야겠다. 육즙처럼 터지는 미래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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