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무죄 판결.. 전문가들 "연구 핵심 잘못 해석" 반발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2021. 1. 1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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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나온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 및 피해자들이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회사들에 대한 무죄 판결 선고에 대해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재판부가 과학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해 전문가 증언의 취지를 잘못 이해해 나온 판결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구의 핵심을 재판부가 잘못 해석했으며, 여러 연구를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증명이 된 단 건의 연구를 찾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독성작용 판단 기준도 극히 제한적이라 판단했다. 당시 증인으로 참석했던 안전성평가연구소 이규홍 박사는 19일 입장문을 통해 “연구를 거듭하면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물질과 사람의 피해 질환 간 인과관계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며 “재판부가 자신의 발언을 취지와 다르게 인용한 것”이라고 명확히 반박의사를 밝혔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3부(재판장 유영근)는 가습기 살균제 유해 물질인 CMIT와 MIT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인과성이 뚜렷이 밝혀지지 못했다며 전 SK케미칼 홍지호 대표와 전 애경산업 안용찬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 ‘인과관계 불성립’, 전문가 증언 취지 오해한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규홍 교수가 “CMIT와 MIT는 PHMG와 달리 폐 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판결문만 보면 전문가가 CMIT와 MIT의 인체 위해성을 부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뒤 상황을 고려하면 해당 발언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규홍 교수는 “해당 발언은 특정 한 연구 결과에 한해서 한 대답”이었다며 “한 연구만 보고 해석한 내용을 마치 전체를 본 의견처럼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연구해온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도 이번 판결에서 CMIT와 MIT 물질과 인체 유해성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더 있어야 재판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할지 의문”이라며 “인체에 피해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사실 가장 분명한 인과관계”라고 말했다. 박동욱 교수의 ‘CMIT과 MIT의 건강영향에 대한 고찰’ 연구에 따르면 2017년 12월까지 밝혀진 CMIT와 MIT 함유 제품만을 사용해 폐 손상이 일어난 환자 9명이 있었다. 연구팀은 모두 임상적으로 확인된 사례로 밝혔으며, CMIT와 MIT 함유 제품과 폐 손상 개인 요인과의 인과는 분명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마우스 모델 연구, 천식 유사 증상 일으켰다는 게 핵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마우스 모델에 한계가 있단 점도 이규홍 박사의 증언을 들어 설명했다. 당시 판결문에서는 “연구책임자인 이규홍 박사도 이 법정에서 마우스 모델의 한계점, 기도 내 점적 시험의 한계점에 대하여 진술하였다”며 “연구 결과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며 CMIT와 MIT 물질이 천식을 유발시키거나 악화시킬 것이라 단정하기 힘들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규홍 박사는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가설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통상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라며 “마우스 모델로 사람 천식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규홍 박사는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와 MIT가 폐 섬유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동물 실험으로 규명한 바 있다. 이규홍 박사는 “이 연구는 사람에게서 일어났던 천식과 CMIT와 MIT 성분의 인과관계 가능성을 제시한 게 핵심”이라며 “만약 당시 질문을 마우스실험을 가지고 사람에게서 천식이 일어난 것을 100% 증명할 수 있냐 묻지 않고, 실험 결과로 CMIT와 MIT가 마우스에서 천식 유사 증상을 일으켰느냐고 물었다면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쥐의 기도에 성분 물질을 떨어트린 뒤 결과를 조직 병리, 폐 세척액 검사, 신호전달물질분석, 폐 기능 검사 등의 방법을 사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조직 병리에서는 사람에게서 나타난 천식과 유사한 소견을 보였고, 폐 세척액 검사에서는 천식 질환 염증에서 주로 작용하는 호산구와 관련성이 나타났다. 신호전달물질분석에서도 천식에서 중요한 제2형 조력 T세포와의 관련성을 보였다.

◇재판부 독성작용 판단 기준, 극히 제한적이야

재판부는 독성작용 판단 기준으로, ‘흡입성’과 ‘CMIT와 MIT의 말단 세기관지 부근의 폐까지 도달’을 꼽았다. 세기관지는 허파 내 기관지의 가장 끝에 있는 가느다란 공기통이다. 이규홍 박사는 흡입이 아닌 기도 내 점적 시험으로도 독성작용 인과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또 천식은 말단 세기관지 부근 뿐 아니라 기관 및 기관지의 증상도 매우 중요하다며 반박했다. 이규홍 박사는 “독성작용은 물질이 축적돼 직접 세포에 손상을 가하는 경우에만 생긴다고 한정할 수 없다”며 “가습기 살균제처럼 지속해서 반복 노출되면 손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기에 판결문처럼 독성작용을 지극히 제한적인 경우로 한정해 인정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 단건 아닌 종합적으로 봐야

재판부는 “누구도 자신들의 실험 결과를 가지고 CMIT와 MIT 성분과 폐 질환 혹은 천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개별 실험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해내려고 했던 재판부의 사건 판단 관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땐, 연구 단 건이 아닌 모든 결과를 종합해 인과성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박동욱 교수는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자가 인과성 규명을 위한 연구를 해왔다”며 “단 건의 실험으로 증명하려 하고, 연구원 개별로 심문해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과학적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오늘(19일) 이번 1심 무죄판결에 항소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도 오늘 오전 무죄선고를 비판했으며,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에서는 학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과학적 방법론에 무지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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